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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y 27. 2019

마침 그래서 다행인날 ​

빗나간 일기예보


중 간 고 사


봄은 아름답고 놀라운 계절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진 않는다. 가장 가까이 우리 아이들만 봐도그렇다. 5월이 다가올 무렵 중간고사가 시작이긴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2주전부터 아님 훨씬 그전부터 긴장을 하고 본격적인 시험준비에 들어간다. 그동안, 비교적 성실한 학생인 큰 아이는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며 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학교 점심시간.

 아이스크림 꽁지에 눈꼽만큼 들어있는 초릿같달콤한 그 시간. 

그저 교실책상에 매여있지 말았으면 했다. 교정의 푸른나무밑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깔깔깔 수다삼매경에 빠졌으면 바랬다. 혹 그때 따스한 봄햇살이 지친 아이의 어깨를 다정히 토닥여 주었으면 했다. 보드라운 뺨을 스치는 바람 느끼고 킁킁 거리며 풀냄새 맡다 에취!재채기도 해 보기를 바랬다.


예민한 아이라 시험때만 되면 소화불량과 두통에 시달린다. 안스러운 마음에 병원데려가도, 의사 선생님은 고3병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좀 나아질거다 말 정도로 아이를 안심시켜줄 뿐이다. 오늘은 중간고사 마지막 날. 시험을 무사히 치른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친구랑 점심 사 먹고 좀 놀다 갈께~"

"응~그래 넘 늦지말고."

하마터면 시험은 잘 쳤냐고 물어볼뻔 했다.


빗나간 일기예보


3일동안 비가 내린다더니, 구름사이로 반가운 햇님이 방긋 얼굴을 내민다. 빗방울을 피해 처마밑에 널었던 빨래를 서둘러 마당으로 내다 놓았다. 이번주 잦은 비 때문에 빨래가 조금씩 밀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비가 그쳐 다행이다. 아직 건조기가 없는 우리집 사정상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늘이 그새 맘 변할까 세탁기를 좀 혹사 시켰다. 을 경로당 야유회가 오늘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마침 해가 나와줘서 날씨 걱정을 많이했던 어머님도 봄나들이를 잘 다녀 오셨다. 이레저레 맑은 날씨덕을 보았다.



밀린 빨래를 해결하고 생긴 여유시간,  기름때가 누렇게 묻어있는 가스레인지 후드가  눈에 들어왔다.  후드청소 매일은 못하고 눈에 많이 거슬릴때만 하고 있다. 얼마전 홈쇼핑에서 대량구입한 다목적 세제를 테스트 해 바야지. '칙칙칙' 세제가 흘러내릴 정도로 충분히 뿌린후 의자에 올라가 거친 수세미로 힘껏 박박 닦아내었다. 보기에도 꺼림직한 누런 기름때가 잔뜩 묻어 나. 다시 칙칙 뿌려서 두어번 더 닦아내었다. 마알갛게 되었다. 2% 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전과 비교할바 아니다. 그래! 청소는 이맛이야. 미니멀은 집 사정상 못해도 맥시멀은 싫다. 낡은 주방 구석구석 플라스틱 반찬통. 오래된 후라이팬. 짝잃은 냄비뚜껑등도 모아 버렸다. 조금 훤해지고 깨끗해 보이는 주방을 보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주부의 소소한 행복이다 .  공들여 놔도 아무도 알아주진 지만 그래도 내가 좋다. 칭찬스티커 하나 !부쳐주고 싶을 정도로.


우리 시어머님은 뭐든 사생결단 하듯 하시지만 난 설렁설렁 한다.  예전엔 애들 때를 밀어도 사생결단? 하시니 아이들이 슬슬 피한다.

"어머니~흰 때는 조금 붙어 있어도 몸에 나쁘지 않데요." 울 엄니 들은척도 안하신다. 이젠 그 시절도 무심히 가버리고, 생전 등 밀어달라 아쉬운 소리한번 안하시던 어머님께서 얼마전 나를 호출 하셨다.


"야야 등좀 밀어바라....때 마이 나오제?"


 한결같이 씩씩하실것만 같았던 시어머님도 세월 을 거스릴순 없으셨나 보다.



마침....그래서 다행이다.


평소보다 쬐금 더 청소를 하고나니 노곤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과일 좀 깍아먹고, 이제 코에 봄바람좀 넣어야 할 시간. 시계 오후 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큰 아이가 참치김밥 먹고싶다 해서, 슬렁슬렁 나가 운동도 할겸 장도 좀 볼겸 했더니, 막내 어린이집 버스 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어머님도 경로당 야유회 가시고 안 계시는데,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다. 오늘은 쭉 집순이 모드가 되야 한단 말인가.


"엄마!  나 왔어."

"어! 일찍 왔네. 밥은 먹었구?"


때마침 큰 아이가 귀가를 했다.

"엄마, 너 먹고 싶다던 참치 김밥 재료사러 갈랬는데 , 막내 오면 좀 받아놓을래? "


"그러지머"


쿨한 아이의 대답. 이왕 걸음한 김에 애정카페에 들러 라떼도 한잔 할까 싶은 생각벌써부터 신이 다.


냉장고에  김밥김이랑 당근 오이 계란등이 있어 단무지랑 참치 정도만 사면 될 듯 싶다.

큰애한테 막내를 부탁하고,  마당을 나선다.


마침,그래서 다행인 이러저러한 일 까닭에 , 그날 저녁은 무사히  참치김밥으로 마무리 할수 있었다.



어린 시절엔 계획을 세웠을때 그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걸 무척 못 견뎌했다. 하지만, 삶을 돌아보니

빗나간 일기예보같은 날들이 있어 오히려 삶이 덜 지루했던거 같다. 모든 인생이 생각한대로 계획한대로만 진행된다면, 마치 줄거리를 다 알고 보는 심심한 영화같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내가 길을 선택하고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삶이 나를 코너로 몰아세우고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이끈적도 많다.


그러기에 언제부턴가 큰꿈을 그리기 보다, 작은 성취에 의미를 두곤한다. 인생에 있어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함을 알고부터 인거 같다. 작은 걸음이라도 거북이 같은 꾸준함으로 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당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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