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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y 26. 2020

그녀가 피곤하지 않은 이유

봄밤의 불청객

저녁설겆이를 하려고 씽크대앞에 섰다. 분홍색 고무장갑을 양손에   수세미에 세제를 찔끔 짜 은다음 조물조물 하기를 몇 번,  개수대에 수북하게 쌓인 그릇들이 부담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순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생각 '아!정말 하기싫다.누가 대신 해줬으면...'


사실 하루중 가장 주방에 들어오기 싫은 시간이 저녁식사후다. 특히 이 날은 늦은 오후에 목욕까지 다녀온후라, 식사중 내내 누르고 있던 노곤함이 온몸을 집어 삼키는듯 했.  화요일은 목욕탕 휴무일이라, 오늘 놓치면 수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는 반신욕은 내가 일상에서 누리는 몇 안되는 작은 일탈중 하나이기에 양보하기가 싫었다. 어지간히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늘 0순위에 두고 있다. 탕에서 적당히 따스해지고 노곤한 몸으로 즐기는 약간의 낮잠은 꿀맛이지만, 어떤 날은 낮잠을 즐길 여유도 없이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어제가 그런날 이였다.


"너거 엄마 계시나?"

현관문 너머로 동네 아즈매가 어머님을 몇 번 부르신다 싶더니, 바로 문이 삐죽이 열린다. 해도 저물었는데 이 시간에 누구지?온 식구가 다 있는데 설마 들어오실까 했다.하지만  웬걸! 아주머닌  당신집이라도 되신듯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들어오셔서, 철퍼덕 소파에 앉으셨다. 오히려 맞은편의 남편이 누워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 자리정돈을 한다.


"누구 왔나?"

"어머님, **아즈매 오셨어요."

화장실에 계시던 어머님도 이 시간에 누군고 하는 얼굴로 나오셨다. 오신 분을 라 할순 없으나, 이야기가 길어지는건 싫은데...8시가 다 된 시각에 남의 집을 방문해 거실소파까지 떡하니 차지하시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어머님과 나 남편 모두 내심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머님도 하루종일 밭메시느라  초저녁잠이 많으셔서 일찍 주무시는 편인데, 이야기 하시느라 잠도 잊으신듯 보였다. 소파에 앉으시면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꼬박꼬박 인사를 하며 조는 분이신데, 이야기 보따리가 한번 풀리니 잠은 어디로 달아나고,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지고도  한참을 더 가는듯 다.


다른때 같으면 설거지를 그치고 다과라도 급히 내었겠지만, 몸도  마음도 이런 저런 이유로 첨엔 내키지가 않았다. 잠시 주저하다가 음료라도 내어 가야겠다 싶어 고무장갑을 벗었다. 그저 모른채 하려니 마음이 그러는거 아니라고 자꾸 보챈다.

 "금방 밥묵고 왔는데 아유~귀찮게 할라고 준비하노."

사양하면서도 못 이기는척 받으시고  시원하게 쭈욱 들이키신다.나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김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나기가 귀찮아 남은 설거지일랑 내버려두고 괜히 거실에서 물쩡 거리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예전엔 어르신들 대화에 감히 낄수도 없던 나인데 참 세월이 무색하다 싶기도 하고, 함께 수다떨고 앉아있다보니 무겁던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의 착각일까.


**아즈매가  우리집에 드나든지가 적어도1년쯤 된 듯하다. 우리 어머님이 밭에서 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장에 내다 조금씩  팔기 시작한때로 기억을 거슬러가 본다 . 아주머닌 평생 장에 드나들던 분이셨기에 어머님께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자 하셨고 관심을 나타내셨다. 자식들 다 출가하고 혼자 계셨기 때문에 외로우셨는지, 우리집에 오시면 언제나 본론보다 사설을 길게 늘어 놓으셨다 . 젊은 시절엔 대구시내 안가본 장이 없을 정도로 다니셨다지만 이젠 연세 까닭에 우리지역 5일장만 나가신다. 그 체력과 강단, 삶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이 우리 어머님 못지않은, 어떤 면에선 능가하는 분인듯 느껴졌다. 병든 시아버지를 모셨고,평생 경제활동 못하는 몸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장돌뱅이 소리를 들으며 보따리장사로 5남매를 키우셨다. 그 엄청난 세월을 아무렇지 않게 남이야기 하듯 하신다.


우리 어머님이 지란지교에 나오는 친구라도 되는것일까. 저녁을 드시고 편하게 오셔서 차도 한잔하시고 한참을 머물다간 당신.

"엄마!저 할머니는 엄마가 편한가바"

훈수두기 좋아하는 참견쟁이 세째가, 대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를 보며 한마디 거든다. 난 주방에서 하던 설거지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고, 어머님도 자리정돈을 하신후 방으로 가 피곤한 몸을 그제서야 뉘이셨다. 내일 장날이라 준비할게 많다며 아쉽게 돌아간 당신. 식구가 많아 늘 복작복작 산만한 우리집이 잠시 누군가에게 편한 공간이 될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늘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은 진리다.


 "사람사는곳에 사람 드나들때가 좋은것이야"


세째가 그린 행복한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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