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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y 30. 2020

학교 가는 날

잃어버렸다 찾은 것

학교 가기 싫은 아이

"우리 예쁜이가 웬일로! 학교 많이 가고 싶었구나^^"


중학생 둘째가 오늘부터 학교에 간다. 3학년이 된 지 석 달만이고, 겨울방학까지 더하면 꽉 찬 다섯 달 만이다. 자기 전 아이의 부탁도 있고 염려도 되해서 깨우러 내려왔더니, 걱정과 달리 반듯하게 앉아 요리조리 바쁘게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심심한 단발머리에 방긋방긋 볼륨도 넣고, 메이컵도 살짝 했는지 얼굴이 봄꽃처럼 화사하다. 작년 겨울방학 직전까지 나랑 아침 등교 때마다 실랑이하던 그 애가 맞나 싶었다. 다섯 달 만에 가는 학교라 그런지 아이도 조금 들떠 보였다. 몇 달 동안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선생님께 예쁘게 보이고 싶은 귀여운 마음도 살짝 보였다. 내가 앞서 걱정했던 일은 다행스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는 학교 가는걸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늦게 일어나는 날도 머리는 굳이 감아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제대로 말리지 않아 젖은 수세미같이 축 늘어진 머리카락, 운동화와 교복은 가방에 그대로 쑤셔 넣은 채, 친구들과 우정의 징표로 한 짝씩 바꿔 신은 짝짝이 슬리퍼를 아무렇지 않게 고 학교에 가는 날이 흔했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봐야 했던 엄마는 가슴이 쓰렸다. 사랑스럽고 속 깊던 내가 알던 그 아이를 가슴에서 아프게 지워야 했다. 어떤 날은,  신경질적인 큰소리로 서슴없이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긁었다. 그러고 돌아서면 어김없이 말이 부메랑처럼 내 머리에 맴돌며 가슴을 후벼 팠다. 나의 10대 시절.. 엄마는 잔소리쟁이야! 난 크면 우리 애한테 그런 말 절대 안 할 거야 했던 그 말들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뱉어내고 있었다. 난 못난 엄마였다.


지각과 복장 불량은 예외 없이 벌점으로 이어졌고, 선생님의  상담전화가 울릴 때마다  큰 바윗돌 하나가 가슴으로 쿵! 떨어졌다. 그런 일이 잦아질수록 아이의 자존감이 더 바닥으로 추락하는 듯 보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에게 진짜 상처를 주고 흉터를 남긴 건, 태생부터 모범생인 위로 4살 터울 언니와 자기를 사사건건  비교하는  엄마였다.  아이넷을 키우고 있노라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다녔던 나. 나름의 육아 철학이 있음을 자신하나에게 보란 듯이 다가온 둘째의 사춘기. 아이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처럼 거칠어져 갔, 엄마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거친 파도 위를 아이와 함께 넘어 했다. 갱년기를 앞둔 엄마는 사춘기 아이를 위해 엄마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 2020년, 아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교 가고 싶은 아이들

겨울방학이 끝난 지 3개월, 개학은  자꾸 미뤄지고 .

몇 달 학교에 안 가는 아니 못 가게 되어버린 초유의 사태는 모두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잠시라고 생각했던 전쟁 같은 아침의 휴전상태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몇 달째 이어졌고, 나도 아이도 각자의 다른 이유로 조금씩 지쳐갔다.  등교시간 둘째와의 격렬한 실랑이가 다시 시작된다 해도, 학교 못 가는 아이를 집에서 계속 지켜보는 것보다 나을 듯했다. 둘째를 포함해 학교에 못 가는 아이 넷을 집에서 지켜보기가 쉽지 다. 삼시 세끼 네 끼 때론 다섯 끼를 챙기느라, 하루 종일 주방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 아니었다.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 한 마리가 날개가 꺾여 날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처럼 아이들이 안되어 보였다.


아! 학교 가고 싶다( 중학생 둘째)

엄마, 학교 가서 새 친구들 만나고 싶어( 초4학년 세째)

학교 가면 운동장 가서 친구들이랑 놀 거야( 초1 학년 넷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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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은 어느새 학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늘 지각대장이었던 둘째까지도. 다시 벌점을 받고 지각하는 일상이 되풀이될 수 있을 텐데,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다. 학교 안 가니 지각할 일도 없고, 잔소리를 듣는 일도 벌점을 받는 일도 없어졌다. 그저 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켜놓으면 그만이었다. 자신이 잘 못하는 부분이 공격당하거나 판단당하지 않으니 아이도 각을 세우는 일 없이 많이 유순해졌다.  사이버강의를 들으며 칭찬을 받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규칙과 규율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오히려 맞는 시스템인가?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학교 하면 뭐가 생각나? 운동장, 급식 그리고 친구들이라고 별 고민 없이 대답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늘 단순하다. 맛난 거 배부르게 먹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때 가장 행복해한다. 길게 줄지어 기다려 받아먹던 급식과  마음껏 뛰거나 걸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넓은 운동장, 그리고 또래 친구들이 있는 학교.  학교 가는 게  대부분을 차지했던 아이들의 일상은, 어른들이 가끔씩 떠올리며 위로받는 학창 시절 추억의 한토막과 닮아있다. 소중함을 모르고 스쳤던 그때. 영원할 것 같던 그 시절이 마음에 별이 되어 떠오를 때가 가끔 있다.


집에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둘째 아이의 학교가 있다.

붉은 덩굴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나지막한 담장을 따라 걷노라면, 울타리 너머로 넓은 운동장과 학교 건물이 보인다. 아이들 없는 휑하고 텅 빈 운동장을 매일 지나쳐야 했을 선생님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작년 이맘때는  운동회도 했었다.  학교 운동장을 훌쩍 넘어 하늘에 닿을 듯 쩌렁쩌렁 울렸던 아이들의 함성소리. 그날 푸른 기억이 마치 어제 일인 듯 가깝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책가방을 매고 학교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 게 얼마만인지! 아이의 발걸음이 명랑해 보인다.

잠시 잃어보았기에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딸! 학교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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