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좋아하기에, 이틀동안 내린다는 장맛비가 오늘까지 이어 내렸으면하는 바램이컸었다.하지만하늘은 딱하루동안만비를 내어주더니 하늘문을 닫고 말았다. 아직 먹구름이 잔뜩이라 조금 더 내리지 않을까 기대했는데곶감 이야기에 울음을 그친아이처럼 비가뚝 그친다. 처음엔 조금 아쉽다가 구름이 걷힌후에는 더아쉬운 마음이 밀려드는게 오후가 넘어가도록 그러했다.비를 하늘에 맡겨놓은것도 아니면서 왜 하늘에 대고 원망을 할까. 장마라 하지만 도무지장마철같지 않아 섭섭한 목요일아침.
-엄마,오늘 비 와?
-아니 오후엔 비 안 온데
비도 소강상태고 오후엔 개인다 했으니, 일단 일기예보를 믿어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잰걸음으로 서둘러나간뒤라, 하늘이 혹 변덕을 부려도 어쩔수 없지만, 행여나 그럴리는 없을듯 보인다.
장맛비는 굵은 빗방울이 연이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야 제맛이다.우르릉 쾅쾅 천둥소리도 가끔 들리고하늘을 가르며번쩍이는 번개와 함께 따닥따닥 창문을 두드리며 시원하게 뿌리는 장맛비는 여름이면 은근 기다려지고, 늦어지면 염려가 된다. 어릴적한번 장마가 시작되면 열흘씩 비구름이 하늘에 머물곤 했었다. 장맛비에 발이 묶여 하루종일 방에 들어앉아 처마밑으로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만 쳐다보던 단순한 기억...이젠 해마다 여름이면 아이스아메리카노보다 더 생각나는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최근 길어바야 고작 이삼일 내리는 비를 장맛비라 하니 어이 하늘이 이럴까싶다.빈커피잔을 들고 소파에 앉으셔서비내릴 기색없는 하늘을 잠시 쳐다보시던 어머니가 좋은 궁리를 하셨는지 말씀을 하신다.
비가 그렇게나 뿌리는데도 한사코 대문을 나선 어머님께선, 몇 시간후 제법 무게가 있어 보이는 가래떡 봉지를 소중히 품에 안고 오셔서 전리품인냥 며느리앞에 떡하니 내려놓으셨다. 갓 뽑은듯 말랑말랑 반지르르 윤기나는 가래떡이 하나 둘 셋 넷.....열. 정말 열줄씩이나 들어 있다니.공짜가 어디 있냐며얄밉게 토를 달던 며느리는 반색을 한다.애들 좋아하는 떡볶이를 할까 달콤한꿀에 찍어 먹을까 꼬득꼬득 말려서 불에 노릇노릇구워 먹을까 이럴까 저럴까.
평소 손녀와 함께 우리집에 자주오시는 아즈메가 마침 아이를 데리고 마실 오셨다. 놀다가 가신다기에 거저 들어온 가래떡 10줄에서 2줄을 뚝 떼어 봉지에 넣어, 손녀랑 드시라며 챙겨 드렸다. 비 오는날수고롭게 걸음하신 분은 어머님인데 생색은 며느리가 다 내고 있다. 물어보고 드리진 않았지만 평소우리 애들도 그 집서 놀며 덕을 볼때가 많기에, 왠지 당연히 드려야 할것을 갚은 느낌이었다. 어머님이 계셨어도 마땅히 그리 하셨을 것이다.
우리 마을은 반촌이라 농사지으시는 분도 많으시고, 살아보니 인심이 아주 박한 동네는 아니라 여겨졌다. 어른을 모시고 살아 그런지, 거저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더러 자주 들어오는데 칠월 이맘때엔 철이 철인지라 특히나 흔하게 들어온다. 하루는 찰떡을 어떤 날은 살구를 또 어떤날은 오이나 상추 가지등이 들어온다. 모두 못생기고 흠 있는것들이 많지만 먹는데엔 별 지장이 없다. 얼마전엔 이곳저곳에서 감자가 들어온 덕에,작년 멧돼지가 우리밭의 감자를 다 파먹은 뒤 감자나 고구마등을 심지 않았어도큰 아쉬움을 못 느끼고 있다.
-어머니, 저희가 먹을 복이 많나봐요. 오늘은 머가 많이 들어오네요
-야야, 사람사이에 공짜가 있더나. 나도 밭에서 내려옴서 이것저것 조금씩 챙겨준다 아니가. 가는정이 있어야 오는정도 있지.내꺼 귀하믄 남에꺼 귀한것도 알아야한다
가는정이 있어야 오는정이 있고,
심은것이 있어야 거두는게 있다는 자연이 가르쳐주는 단순한진리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공짜아닌 공짜같은 무언가 들어오는날은, 떡을 나누듯 습관처럼 조금씩 떼어 이웃과 나누고 있는 낯설지 않은 내 모습을 보게 된다.하늘이 거저 내려 주시는 비나 눈이면 모를까 공짜 같아 보여도 사람사는 세상에 공짜는 없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