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고 있자니,마을 전체로 방송을 내 보내는스피커에서낯익은 이장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웅~웅~사이렌이 울리듯 크고 요란하지만소리가정확하지 않다. 대충 짐작으론 어르신들은 몇시까지 회관으로 모두 나오시라는 말. 오늘이 무슨날 인가?마침어머님 단짝 친구분이 대문을 들어오시며 마당에서 기침을 하신다.
머하노 가 자!
어머니를 데리러 오신 모양이였다.
옷이나 좀 갈아입고가게 좀 들어온나.
그제사 어머닌, 일복에서 외출복으로 급히 갈아입으신다.
오늘은 초복이었다.
해마다 마을 경로당에선 잊지않고 살뜰히 초복을챙긴다. 삼이 들어간영계백숙까진 아니더라도 마을 통닭집에서 바삭하게 튀겨낸 치킨과시원하고 달달한 수박정도로 섭섭잖게 대접을 한다. 이번해엔특별히 근처요양원에서 짜장면을 제공하기로 되어있고, 식사후 추억의 영화 관람도 예정되어 있단다. 마음만 바빠이옷 저옷을 들었다 놨다 하시는 시어머님께 며느리의 어설픈 훈수가 더해져 외출준비가 대충마무리 되었다.
소파에 조용히 앉아계시던 친구분이딸자랑을 하시며 말문을 여셨다.입고오신 평범해 보이는 면셔츠가하나딸이백화점에서10만원씩이나 주고 사온 티셔츠란다. 시어머님의 외출복인분홍색 인견블라우스와 바지는 우리 사위가 사준거라한마디 거들법도 하지만, 어머님이 남앞에서 내 식구 자랑하시는건 한번도 본적없는듯하다.외출후당신손으로 깨끗히 손빨래해서 반듯하게 개어아이들손타지 않는곳에 잘 넣어 두시는걸 보면 애지중지 하시는건 틀림없다.혹사준이가나라면 어머님이 약간의 생색을 내셔도귀엽게 봐줄수 있을듯한데,좋다 싫다 표현을 너무안하시니 답답함인지 섭섭함인지 모를 감정이 가끔 생기기도 한다.
어르신들모인 장소에 시어머님이 걸음 하시는날은 어머님 차림새에 한번 더 눈길이 간다. 경로당에 어르신들을 모아놓으면 수다스럽기가 경로당 천장을 뚫을 정도라 들었다. 초등학교 개구장이들보다 더했음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어머님을 배웅만 해드리고 감히 회관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한 나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봉사를 위해 경로당에 갔더니 모두가 말을 하긴 하는데들어주는이는 아무도 없다고했다. 그 말을 듣고는 상상이 되어 배꼽을 쥐고 크게깔깔깔 웃어 버렸다.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 연세에 거짓말만 아니면 하고픈말 다 하고 사는것이 그리 나쁘다 여겨지지 않는다. 교양있는 사람인척 할 필요도 없다. 생각하기 나름이라 여겨졌다.
가셔서 사소한 일에 싸우거나 나쁜말을 옮기는 것만 아니라면 좋다. 우리 어머님세대는 한 많은 세대니 오죽 하고픈 말씀들이 많을까싶고. 그 중 빠지지 않는게 자식자랑이고, 자식들이 어버이날 다니러 온 이야기들과 용돈을 얼마 주더라등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도마위의 생선처럼 오르내릴 것이다. 며느리와 함께 사는 집이 드물기에, 그런 자리에서 어머니의 행색이 초라하면 말이 날까 나의 신경이 예민해 지는것이다.
저녁식사후 어머님께 넌즈시 여쭈어 봤다.
-어머님, 낮에 영화는 재미있으셨어요?
-아구 그래 내가 손수건도 안 챙겨 갔는데 얼마나 울었다 야야. 어마이캉 아캉 떨어지는게 그래 안됐더라
낮에 상영한 영화는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나 역시 어릴적 티비화면으로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는 당시 상도 받았던 유명한 화제작이었다. 텔레비젼에서 자주 재상영한 영화지만 자식들 공부시키고 굶기지 않기위해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와 했던그녀가 느긋하게 티비앞에 앉아계실 여유가 없으셨으리라. 어머니에겐 뜻하지 않게누리게 된 선물같은 시간인듯 했다. 얼마나 좋으셨으면...몇 번이나 말씀을 하신다. 안 물어봤으면 어쩔뻔 했나. 물어보길 참 잘했다.
우리 어머님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잘 가시지 않는다. 그저 눈만 뜨면 밭에 가시고 잠시도 쉬지 않으시는게 내게 스트레스가 될 정도다. 그나마 제작년 쯔쯔병에 걸리셔서 죽을 고생을 하신이후론, 경로당 야유회나 잔치등에 예전보다 자주 가시는 모습에 그나마 한시름 놓을수 있었다.
어머님의 남은 여생이얼마일지 알수없어도,하루를 사시더라도 오늘처럼만 즐겁게 누리며 건강하게사셨음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