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던 곳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조회 시간마다 주님의 기도를 외웠다. 그 시간이 반복되니 내 종교가 궁금해졌다.
나에게 종교의 선택권은 없었다. 어머니가 결혼하면서 다닌 절을 뱃속에서부터 태어나고 자라며 따라다닌 게 자연스럽게 내 종교인 불교가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니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중에서 문경반야불교학생회를 알게 되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린 마음에 천주교 학교에 다니면서 불교학생회를 다녀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됐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봐도 불교학생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변화가 없었다. 되든 안 되는 한번 물어나 보자며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제가 문경반야불교학생회라는 곳에 가입하고 싶은데요. 천주교 학교에 다니는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되지. 뭐든 재미있게 열심히 하는 좋은 거지! 잘해봐~"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선생님이 날 응원해 주는 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아는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만이 최고라고 여기고 사람들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 같은데 타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덕분에 나도 종교에 대해서는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문경반야불교학생회 19기가 되어 매주 토요일 학교가 끝나면 학생회가 있는 무량사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활동을 시작했지만, 나는 고민하느라 2학기가 되어서야 학생회에 들어갔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동기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문경반야불교학생회는 오랫동안 유지된 만큼 선배들이 많았고, 입지가 탄탄했다. 부처님 오신 날 딱 한번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봉암사도 문경반야불교학생회라고 하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었다.
문경에 많은 사찰 중에서 김룡사는 특히 자주 갔다 19기의 놀이터라 불릴 만큼 익숙했고, 즐거웠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면 선후배 모두 모여 2박 3일 수련회를 진행했다. 사전 준비를 위해 임원들은 선발대로 들어가는데, 내가 회장을 맡고 있어 꼭 들어가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낮에 선배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들어갔지만, 나는 볼일이 있어 끝나고 가느라 막차를 탔다. 혼자서 버스 타본 적이 없어서 걱정 됐는데 마침 선배 한 명이 함께 할 수 있다고 해서 둘이서 길을 나섰다.
점촌시내버스터미널에서 막차를 타고 김룡사 입구에 도착하니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입구에 있던 몇 안 되는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져서 캄캄한 밤이었다. 이 어두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지만, 옆에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됐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지나 만난 비포장도로는 다른 세상과 연결된 것만 같았다. 하늘 높이 솟은 전나무 끝에 걸려있던 달빛이 전날 내린 눈에 비쳐 김룡사 가는 길은 한낮처럼 밝아졌다. 운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길을 안내하고, 나무들이 무서워하지 말라고 함께 걸어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무서웠던 마음은 없어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30년 전 김룡사 가는 길은 10년 후, 20년 후에도 변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