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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Dec 22. 2021

11월 4주 차

전환하다 :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꾸다


 한국으로 가기 전 파리에 들러 이틀간 머물렀다. 인터넷은 안 본 것을 보게 하고 본 것은 다시 볼 수 있게 하지만 인터넷으로 본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눈에 작은 의심을 던지자 내가 본 것과 보는 것에는 작은 금이 난다. 눈이 보는 형태는 같아도 같은 형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해 우리의 시각이 형상에 가까운 형태를 착각해 보도록 만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직접 보는 것과 인터넷이나 매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소민이 평소 인터넷에서 반 고흐가 그린 그림을 볼 때와 몇 년에 한 번씩 파리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전시된 반 고흐의 그림을 직접 볼 때 그 차이를 느꼈다. 마치 옆에서 고흐가 그림을 그리고 있고 자신은 그와 그림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곤 했다. 이번 파리 방문에서도 소민은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관람했고 마음 한 편으로는 한국에서 볼 동양의 문화를 직접 접할 때에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을지 기대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여행을 앞둔 이들이 밤잠 이루기 쉽지 않듯 소민과 소피는 9시간에 걸쳐 도착할 나라를 상상하며 들떠있었다. ‘난 가면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어. 매운 소스에 떡을 넣는데 떡은 작지만 쫀득하고 단 맛이 난데. 전에 초밥 집에 가서 초밥을 먹은 적 있었는데, 거기 초록색 소스가 뭐더라,,, 아 고추냉이? 그것도 많이 먹으면 맵던데 그거보다 더 매울까? 궁금해 죽겠어.’ 소피의 말은 소민 머릿속으로 타고 들어가 상상을 더했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뗬다. ‘한국에는 반찬이란 게 있데. 음식을 주문하면 애피타이저로 반찬이란 걸 주는데 식전 빵이나 샐러드처럼 한 가지만 주는 게 아니고 여러 개를 준데.’ 라며 진위성이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정보를 소피에게 알렸다. ‘나는 궁전에 가고 싶어. 서울에는 궁전이 도심에 있데. 거기는 아직도 창을 들고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있더라.’ ‘에이 거짓말.’ ‘정말이야, 내가 사진으로 봤다니까. 말 걸어도 대답도 안 한다는데 한 번 만져볼까 봐.’ ‘참 신기한 나라다. 아직까지 창으로 경계를 서다니.’ ‘그러니까 말이야.’ 이번에는 잘못된 유추로 대화하는 아이들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나가면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비단 해외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살고 있는 마을만 벗어나도 처음 간 곳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되며 자연히 견문이 넓어지게 된다. 뒤바뀐 세상에서 영향받기란 쉬운 법이지만 반복적인 회색 필름 처리된 일상에서 톡 튀는 빨강 또는 파랑을 발견하며 배우는 것은 위대하다. 언젠가 소민 역시 자신이 자리 잡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위대한 삶을 살거나 위대한 사람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그 전초전으로 새 문화를 접하며 그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자 소민은 공항에 적힌 글씨, 특히 불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곳의 표지만, 물론 영어는 적혀있었지만, 에 놀랐다. 소민과 소피는 로랑을 따라다니며 낯선 나라의 환영에 호기심 많은 눈으로 경계했다. 부모를 자신 앞에 세울 수 있는 존재는 어리거나 스스로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이며 다행히 소민, 소피는 스스로 내세울 것이 없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어렸기 때문에 아무도 흉을 보거나 쳐다볼 일이 없었다. 한 가지 소민이 놀랐던 것은 소민과 겉으로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소민은 지금껏 프랑스에 살면서 피부색이나 생김새의 차이에서 소외감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같은 피부색과 생김에서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만큼 한국인과의 마음의 거리가 가깝지는 않았으므로 로랑 뒤에 숨어 다녔지만 말이다.


 사건은 이들이 한국에서 돌아가기 며칠 전에 일어났다. 사실 조짐은 그전부터 보였는데 첫날 한국에 대한 경계심은 다음날 아침잠과 함께 달아난 듯했고 소민은 한국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이는 소피가 온통 낯선 곳에서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양새와는 정반대였다. 이들의 모습은 경주가 아니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연상케 했고 그 차이를 로랑이 심판이자 중재자로서 조율하곤 했다. 궁에 갔을 때 소민은 기와의 모양과 새겨진 패턴과 색 또 기와 끝의 작은 조각의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느라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고,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역동감이나 먹을 기반으로 한 붓질의 특성에 빠져 하루 종일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더군다나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공부 복습하는 아이처럼 자신이 본 그림의 기법을 따라 시도하곤 했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다음 일정에 지장을 주곤 했다. 결국 관광은 예상처럼 되지 않고 휴양을 온 듯 모든 일정이 소민의 발걸음을 따라 늦어지곤 했다. 로랑은 이에 상당히 곤란했는데 소피는 반면에 흥미를 길게 느끼지 못하고, 사실 소민의 몰입이 비정상적인 면이 있었다, 지루해했기에 소피와 놀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소민이 한국에 빠진 것은 행동에도 소민의 말에도 티가 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있으면 항상 웃는 것처럼 소민은 늘 히죽히죽 웃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었다. 그런 소민을 보며 로랑은 잘 지내는 소민이 보기 좋으면서도 혹시 한국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해했다. 그리고 떠나기 3일 전 우려대로 소민은 떠나기 싫다며 다시 한번 대립각을 세웠다. 로랑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3일 후에는 떠날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단호한 태도라면 소민이 수긍할 줄 알았던 로랑이지만 그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들이 한국에 있었다는 것이다. 닥스에서야 뛰처나가도 한 동네고 프랑스에 불과하지만 한국이라면 얘기가 달라 뛰처나가면 그 길로 영영 이별일 수도 있었다. 처음 거절을 당했을 때 소민이 뛰처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3일 전 처음 이야기를 꺼낸 후 떠나는 날 아침까지 남고 싶다고 말을 할 때마다 로랑은 단박에 거절했다. 소민은 최후의 발악마저 좌절됐음을 느끼며 묵묵히 짐을 쌌다. 이윽고 공항에 도착해 소민은 화장실을 간다 이야기를 했고 로랑과 소피가 소민이 돌아오는 게 늦어져 일이 생겼나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소민은 이미 공항을 떠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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