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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Sep 29. 2015

익숙함이 주는 쾌감

미스터 메르세데스 - 스티븐 킹

첫인상을 말하자면, 솔직히 그다지 '땡기는' 책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취향 문제겠지만 일단 책 표지부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왜 핏빛 비가 내리는 공간에 파란색 우산이 펼쳐져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다 읽고 나서도 표지 그림이 썩 내키지 않는 건 여전하다. 의미하는 바를 차치하고서라도, 요즘 책 답지 않게 너무 직설적이라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 치고는 '얼굴'부터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녀석인 것 같아 약간 김이 샜던 건 사실이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도 그렇다. 스티븐 킹이 마음 먹고 쓴 최초의 추리소설이라고 적혀 있지만 (독자인 내 판단 기준에 따르면) 엄밀히 말해 이 책이 추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범인과의 두뇌싸움을 주요 무기로 하는 정통파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엔 너무 많은 것이 오픈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누구인지 독자는 초반부터 알고 시작하며 오히려 그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포지션도 이따금 나타난다. 범행에 대한 트릭은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거나 불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책장 맨 끝에서야 나타날 범인을 잡기 위해 활자 사이사이에 숨은 단서를 찾아보는 즐거움, 이 책은 그런 류의 유희는 제공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현상을 꼬집거나, 유명 사건과 연관이 있다거나, 사건 자체가 시대상을 드러내고 있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엔 더욱 요원하다. 굳이 연관을 시킨다면 '묻지 마 살인'이 횡행하는 요즘의 시대상을 품고 있는 이야기 정도도 가능하겠지만,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영화들의 원작자이기도 한 작가의 성향을 감안한다면 시대를 고발하는 사회학적 의도가 어찌 그리 많이 담길 수 있을까 싶은 회의감이 더 크게 든다. 즉, 시중에 나온 추리소설의 범주에 이 책을 넣는 것은 어찌저찌 가능은 하겠지만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 될 수 있다.


굳이 장르를 다시 정해본다면, 이 책은 '시나리오'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산문으로 적힌 글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일단 주요 포인트가 되는 '죽음'이 느닷없이 펼쳐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거기에 그 포인트를 적절한 타이밍에 넣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긴장감이 약간 떨어질만하다 싶으면 여지 없이 누군가 죽는 순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그 묘사가 어찌나 세밀하고 (심지어) 가학적인지, 지금 내가 읽은 표현이 제대로 읽은 건지 의심스러워 눈을 찌푸리고 다시 읽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미국 드라마 <24>의 잭 바우어가 퇴직한 후에 일어나는 일을 적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읽지 않은 예비 독자에게도 충분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동양적인 '기승전결'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애당초 생각을 바꿔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이 화장실을 못 가게 붙잡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심심할만하면 예상 밖의 한 건을 터뜨려주는 맛이 있다.


'빵빵 터지는' 이벤트를 부각하려는 작가의 의도일까. 인물들의 캐릭터는 사실 그렇게 입체적이진 않은 편이다. 범인과 주인공, 이야기의 두 축이 되는 인물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설정에다 예상 가능한 동선을 나타낸다. 작가는 아마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주인공을 다른 시리즈에 출연시킬 마음을 없는  듯하다. 물론 한 편의 작품으로 주인공의 생명력을 논하는 자체에 어폐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정도로 이야기를 이끄는 두 개의 축은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2차원적인 캐릭터도 나름의 쓸모는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속도감을 중시하는 스릴러물에서는 말이다. 인물들에 대한 복잡한 해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조금 더 사건에 집중할 수 있고 작가가 달리는 속도를 따라 잡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문체와 함께 바지런하게 밀고 나가는 힘을 과시하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길 수 있도록 한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작가의 세계관에 끼어들기 위해 좁은 틈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독자로서의 수고로움은 쉽게 덜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킬링 타임'용 소설이라고 하면 이 책을 너무 폄하하는 것 같은데,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만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 책은 그야말로 시간을 꿀떡꿀떡 잡아먹는 괴물급에 속한다. 결말 부분이 너무 '할리우드스럽게' 끝나는 것 같아 "설마 이렇게 끝은 아니지" 싶은 느낌도 없진 않지만 박력 있는 플롯과 충격적인 묘사, 거기에 대중적인 캐릭터까지 더해져 '표 값'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장을 넘기려고 마음먹은 독자라면 무방비 상태는 피하길 권한다. 각오를 단단히 다지지 않은 채로 첫 에피소드를 마치고 나면, 너무 감정이입을 해버려 도끼 자루 썩는지도 모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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