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편지 Jul 10. 2022

<이름>이라는 이름


‘지원해주신 ‘여자 셋’ 소모임 지원사업에 대상팀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유달리 피곤한 수요일에 낯선 문자가 왔다. 여성단체 소모임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고 말이다. 아주 오랫동안 여성 글쓰기 모임을 그려왔다. 하지만 나를 붙잡는 하나의 물음이 있었다. ‘작가도 아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책을 내본 적도 없고 유명한 작가도 아니며 모임을 이끌어본 적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날이 갈수록 모르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직장에서 힘이 들면 나보다 앞선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가족의 품이 지긋할 때면 독립한 사람의 이야기가 간절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 데 모아 세상에 알린다면 빛을 보는 사람은 나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소모임 <이름>이라는 돛을 펼치게 되었다.


 7월 2일 토요일 오후 3시. <이름>의 첫 모임을 시작했다. 혹시나 목소리가 떨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준비해온 말을 이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5명 정도의 인원 앞에서도 대강당의 무대에 선 것처럼 심장이 콩닥거렸다. 2명은 <이름>을 함께하는 친구였는데도 말이다. <이름>이 아니었다면 이 토요일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종일 빠르게 쏟아지는 영상물을 보다가 어두워지는 날에 멍해졌을 것이다. <이름>은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여성의 이름을 알게 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게 해주었다. 모임 내내 집중하는 귀여운 정수리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없어도, 어쩌면 순식간에 잊더라도 영원히 꺼내볼 수 있는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그 사진은 이번 한 장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K-차녀’라는 주제에 할 말이 많았지만 무사히 시간 내에 모임을 끝냈고 온 몸에 진이 빠지는 듯했다. 2시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온 마음을 내던졌다. 내가 그랬듯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오해 없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느끼길 바라며 눈을 맞추었다. 깊게 글을 쓰지 않아도 그의 감정이 전해졌다. 우리가 우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첫 모임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2명의 친구들과 함께 기획하고 회의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참가를 기다리던 나날들. 출근길에 갑자기 입금된 3천 원에 이상해하다가 참가비라는 사실을 알고 신났던 그날. SNS 홍보물에 아주 조금씩 늘어가는 ‘좋아요’에 흐뭇했던 그날. 이 날을 위해서 그 많은 날들을 건너왔다. <이름>이라는 이름이 순풍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


@name_ireum0604


작가의 이전글 일하는 기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