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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14. 2022

혼밥 하는 용기

혼자 밥 먹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대학원 시절, 동네 학원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저녁에 토익 특강이 있었다. 1시부터 6시까지 수업을 했다. 저녁을 먹고 7시부터 특강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동안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그 전엔 한 번도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차가운 김밥을 집어 들었다. 유리 창가에 놓인 좁고 긴 바에 앉았다. 우적우적 김밥을 씹어먹었다. 딱딱한 밥알이 치아 사이를 피해 굴러다녔다. 혼자 먹는 모습을 누가 볼까 봐 시선을 내리깔았다. 창밖으로 학생들 얼굴이 지나갔다. 순간, 뭔가 부끄러운 행동을 하다 들킨 듯 눈길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을까? 나를 알아봤을까? 심장이 콩콩거렸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아까 선생님 맞죠? 편의점에서 혼자 김밥 먹던데요? 왜 혼자 드세요? 선생님, 친구 없어요? 왕따예요?"


기습적인 인신공격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치부를 들킨 듯 우물쭈물거렸다.


대학교 4학년, 고등학생 과외를 할 때였다. 일요일에 연속 두 명 과외를 했다. 첫 번째 학생 수업이 끝나고 다른 학생 집으로 걸어갔다. 이동하면서 김밥을 먹었다. 알루미늄 포일을 벗겨내고 김밥 하나를 입에 물었다. 나머지는 황급히  주머니에 넣었다. 입안을 가득 채운 김밥을 열심히 씹어 넘겼다. 누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나 없나 연신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을 때 또 하나의 김밥을 입에 물었다. 누가 다가오면 입을 가렸다. 안 먹은 척했다. 길에서 초라하게 혼자 식사를 때우는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외로움을 들켜버리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다가와 옷을 확 벗겨버리는 듯 수치스러웠다.


대학생 시절, 대부분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매 학기 시간표가 나오면 스케줄에 따라 누구와 밥을 먹을지 정했다. 4교시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과 밥을 먹었다. 어쩌다 일주일 중 하루, 혼자 4교시 수업을 듣는 날이 있었다.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었다. 학생식당을 향했다. 분주하게 밥을 먹고 식판을 정리하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혼자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니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친구가 없고 외톨이다'라고 외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밥을 포기하고 꼬르륵 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 속에 숨었다.


밥 먹는 일은 하루라도 빼먹을 수없는, 꼭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인간 행동 중 하나다. 동시에 인간관계를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밥은 먹었냐, 무슨 밥을 먹었냐고 묻는 일은 나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늘 전화해서 물었다.


"밥은 먹었니? 아침은 먹었니? 무슨 밥 먹었니? 많이 먹었니?"  


대학교에는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었다. 어느 날, 나 빼고 둘이서 점심을 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굶은 날이었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어서 혼자 집까지 한참 걸었다. 속 좁아 보일까 봐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한동안 애들을 멀리했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하거나 걱정하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외톨이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했다.


직장인 4년 차에 뉴질랜드로 혼자 2주간 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난 터라 밥을 혼자 먹어야 했다. 사람이 없어 보이는 3시쯤 쭈뼛쭈뼛 식당에 들어갔다. 몇 명이냐고 물었다. 혼자라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안내했다.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웨이터의 눈치를 살폈다.


 '나를 불쌍하게 보면 어쩌지?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자애가 친구도 없이 혼자 밥 먹는 걸 비웃는 거 아냐?'


그런데 그는 친절하게 물을 따라줬다. 상냥하게 웃어줬다. 내가 혼자이든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공원 잔디밭에서  아무렇게나 누워서 하늘을 보고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기차역에서 아무 데나 앉아있었다. 돗자리도 펴지 않은 채 공원에 누워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나였으면 누가 이상하게 볼까 봐 감히 하지 못했을 행동들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가 어디에나 배어있었다. 그 자유의 향기가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던 나에게 다가와 풍선처럼 펑 터졌다. 느낌표를 던졌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혼자 밥 먹기였다. 아이를 키우며 자유를 그리워했다. 혼자 먹는 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극한의 육아 생활 덕분인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아웃백에 혼자 갔다. 샐러드와 투움바를 시켰다. 옆에 앉은 커플들이 나를 흘끔 쳐다봤다. '저 여자 혼자 왔나 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얼굴이 금세 빨개졌을 거다.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한번 보고 지나갈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다가 소중한 내 식사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더 중요했다.


'누가 보면 어때, 그러라 그래, 난 맛있는 거 먹을 거다'


음식 하나하나 재료의 맛을 음미했다. 아삭 거리는 샐러드와 꾸덕한 파스타의 쫄깃함이 입안에서 춤을 췄다. 평소에는 두 어린아이를 번갈아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온전히 나의 미각에 집중했다. 나에게만 충실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남의 시선에 갇혀 의식하며 살았다. 결혼 전까지는 매일 구두에 치마만 입었다. 조신하고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힐은 벗어던지고 치마도 다 버렸다. 운동화와 편한 레깅스를 입는다. 혼자 카페에 가고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사치를 즐긴다.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바에 따라 살았다.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에 맞추어 살았다. 이제는 내가 기준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남의 시선 때문에 내 본능과 자유를 숨기지 않는다. 모든 게 생각의 차이였다.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 나를 최우선으로 하자 타인의 시선은 걸러진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밥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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