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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23. 2022

34살 엄마의 젊은 날을 불러본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를 이해하다


출산 후 달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엄마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자리인지.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천천히 알아간다. 엄마가 달라 보인다.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있어주었던 엄마. 23살 꽃다운 나이에 외딴 도시로 시집와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생각해 본다. 이제 과거의 엄마가 보인다. 그때의 엄마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싶어 진다.


엄마에게 요즘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도대체 셋을 어떻게 키운 거야?"


 둘 키우면서도 허덕이는 나다. 두 살 터울 아이 셋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고 목욕탕에 다닌 건지... 그 일들이 인간의 힘을 넘어서 초자연적으로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시골에 살았다. 버스 정류장 종점에서 내리면 20분은 더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이름도 안구만리였다.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 중 하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조 아저씨 함박 스테이크' 가게에 간 일이다. 동네에 슈퍼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서 가게가 즐비한 화려한 시내 구경은 재미있는 일 중 하나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상가로 들어갔다. 분수대에 물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지하에 넘실거리던 시원한 온도를 기억한다. 분수대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귓가를 적셨다. 분수대 옆에 함박스테이크 집이 있었다. 엄마는 늘 그곳에 데려갔다. 집에서는 맛보지 못한 담백하고 짭짤한 고기 맛이었다. 정확히 플레이팅 모양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원한 분수대의 물소리와 맛있었다는 기억은 생생하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면 엄마 발이 보였다. 동네에서는 슬리퍼만 신던 엄마의 발에 구두가 신겨있었다. 검은색 힐. 또각또각 소리가 신기하고 예뻐 보였다. 그때 엄마 나이 34쯤이었을까. 지금 나보다 어린 나이에 아이 셋을 데리고 시골마을에서 시내로 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세 아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더 맛있는 것을 사주지 못해서 먹먹했을까. 맛있게 잘 먹는 아이들이 기특했을까. 그때 세 아이를 바라보는 젊은 엄마가 보인다. 그녀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엄마는 늘 좋은 옷을 사주려고 했다. 지하상가에서 예쁘고 깔끔한 브랜드 옷 가게 들어갔다. 샤랄라 빙그르르 돌면 항아리처럼 퍼지는 공주 드레스를 사줬다. 그날 엄마는 무슨 옷을 입고 있었을까. 열 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훨훨 날아갈 듯한 드레스 치맛자락이 좋아서 빙그르르 돌고만 있었다.


생일이면 버스 타고 역 앞 베이커리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사 오셨다. 그 먼 걸음, 한 발자국 한 발자국마다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파티 노래를 불렀다. 귀한 딸기를 한 바구니 씻어 주셨다. 동생들과 셋이서 딸기를 아작아작 행복하게 먹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우리는 해맑게 웃고 있다. 엄마는 그때 딸기를 먹었을까. 지금 내가 아이를 위해 딸기 꼭지만 먹는 것처럼 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시장에 갔다가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엄마는 무거운 검은색 시장 봉지를 양손에 들고 걸었다. 봉지가 무겁게 꽉 차서 터질듯했다. 땅바닥에 끌릴 듯 커다란 봉지가 달랑거렸다. 엄마의 양손에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모습이 보였다. 철없던 나는 엄마가 힘든 줄도 모르고 제 다리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지금은 내가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이와 함께 걸어간다. 아이는 힘들다고 짜증을 부린다. 물건들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 삶의 무게를 이제 내가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간다.


 


엄마와 몇 년 전 3월 연휴에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도 대정읍 쪽에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다. 조용한 마을이었다. 올레길을 걷고 송악산을 걸었다. 육지는 쌀쌀했지만, 제주도엔 어느새 봄기운이 가득했다. 들판마다 유채꽃이 노란빛을 뽑아내며 봄바람을 몰고 왔다. 길을 걸으며 엄마는 들판에 흔하게 자라고 있는 콜라비에도, 하늘거리는 유채꽃에도 내내 감탄했다.


"어머, 너무 예쁘다. 벌써 이렇게 피었네"


유채꽃과 바다, 산을 보고 말갛게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멍해졌다. 흩날리는 꽃잎 하나에도 엄마는 소녀처럼, 햇살이 부서지듯 넘치게 웃고 있었다. 세상 작은 만물에도 하나하나 감탄하며 바라보는 엄마의 여린 마음에 그동안 얼마나 큰 삶의 짐들이 가득했던 걸까.


엄마는 산을 좋아한다. 꽃을 좋아한다. 아이 셋 키우는 삶에 지쳐 사람에게 위로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삶의 무게에 무너지고 넘어져 자연에 기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동안 엄마에게 위로는커녕 어떤 힘도 되어주지 못한 시간들이 생각나  뜨거워진다.



 아이 학비를 뒷바라지하느라 몇십  동안 일을 하신 엄마. 뒤늦게 임용고시를 준비한 나를 마음 졸이며 기다려준 엄마. 화장실은 원래  그렇게 깨끗한 곳인지 알았던 . 밤새 변기를 닦고 배수구에서 머리카락을 빼고 청소를 했다는 것을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엄마의 헌신과 사랑이 있어서 내가 지금 엄마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힘든 , 궂은일에도 싫은 내색  하고 묵묵히  옆자리를 지켜온 엄마. 이제 내가  사랑을 아이에게 나눠줄 차례다.




다음 달 주말에 엄마와 덕유산에 가기로 약속했다. 산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산을 찾는 엄마. 산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엄마. 넉넉히 품어주는 산만큼은 아니어도 이제 내가 엄마에게 평온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삶을 넉넉하게 안아주고 싶다.


"엄마, 오이와 김밥은 내가 챙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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