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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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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un 27. 2022

살아내기

오랜만에 타자기에 손을 얹었다.


매일 쓰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 어떻게든 마음을 글자 위에 꼭꼭 눌러야만 했던 겨울날 들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깐 커피 한잔의 시간 쪼가리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어디서든 얼마나 작은 시간이든 타자기를 들고, 키보드를 들고 침대맡 화장대에서 도서관 창가 앞에서 커피숍의 한 귀퉁이에서 그렇게 타자기를 두드렸다. 한참 마음을 토해내고 나면 이제야 제대로 숨이 쉬어질 것 같은 해방감과 안도감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막연히 두렵기만 했던 복직이 현실이 되었다. 알음알음 물어가며 어떻게든 모르는 티가 나지 않게 카멜레온처럼 아는 척하며 학교 일을 해나갔다. 처음 해보는 워킹맘의 이중생활에 지쳐 학교에서도 죄인, 아이들에게도 대역죄인의 역할이 씌었다. 새벽 기상은 무너졌고 그 좋아하던 독서의 여유도 사라졌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아이를 재우며 잠들었다. 관료제의 권위적인 체제 안에서 교무실이라는 답답한 공간 안에서 오랜만에 해보는 단체생활에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껴가며 그렇게 4개월이라는 시간을 살아냈다.


부리나케 퇴근하자마자 놀이터로의 출근. 잘 안 먹는 아이들을 먹이려 서둘러 밥 짓는 서러움. 몇 개 안 되는 반찬을 들이밀며 밥을 떠먹이면 미안함이 몰아쳤다. 그마저도 잘 먹지 않는 아이들. 월요일이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가지 말라고 오열하는 아이를 발로 몰아내며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어야 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 날엔 눈도 못 맞출 정도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어린이집에 보내놨다. 종일 아이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아픈 아이를 보내놓고 출근을 해야 하나 번민이 밀려왔다.


쓰이지 못한 마음들은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녹아내렸다. 한순간에 밀려오는 허무함. 주말 아침 혼자 호수 둘레길을 돌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번 아웃일까. 애써 달려가던 기찻길을 4개월가량 폭폭 거리며 달리고 나니 막다른 절벽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좋아하던 책도, 산책도, 피아노 연습도 다 재미없고 시시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 삶을 움직이던 원동력이었던 글쓰기. 마음 쓰기. 마음 다독이며 다시 희망을 찾아 즐기며 사는 삶의 자세가 잿빛으로 색을 잃었다. 7월이 다가오는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할 일들은 쌓여있는데. 권태기일까? 위로받지 못한 마음들, 헤아리지 못한 마음들이 비눗방울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공기 중에서 펑펑 터졌다.


22년의 반이 지났구나. 굳어버린 어깨. 여유 없는 마음. 오늘 아침 출근 준비하는 데 아이가 ‘엄마, 이거 봐요’ 하고 나를 불러대도 다정하게 눈 마주치며 ‘와 대단한데’라고 맞장구치며 안아줄 수 없는 엄마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마음이 멈춘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시 돌아가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늘 희망으로 다시 밝음으로 글을 마치는 내 특성상. 오늘도 그렇게 글을 마무리 짓고 싶은데. 조금은 이 서글픔에서 잠시만 머무르다 나가고 싶다. 다 잘될 거다. 주문처럼 외우는 이 말처럼. 조금씩 좋아질 거다. 오늘은 새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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