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 머그더의 <도어> 리뷰
‘선 넘는다’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 개인이 용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를 넘어버렸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다. 보통 부정적으로 사용되는데, 특히 요즘 들어서 더욱 자주 쓰이는 이유는 그만큼 개인화의 강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어>의 주인공 ‘에메렌츠’는 끊임없이 선을 넘는 여인이다.
에메렌츠는 작가이자 화자인 ‘나’의 가정부다. 아이 없이 남편과 함께 지내며 글을 쓰는 일밖에 모르는 화자와 달리, 에메렌츠는 몸을 쓰는 노동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강인한 사람이다. 그녀는 굉장히 특별한 인물이다. 아니, 특별하다 못해 기이하다. 항상 화가 나 있는 듯한 무뚝뚝한 인상과 더불어, 거침없는 감정 표현과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해버리는 직설적인 성격까지. 그러면서도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는 모든 이웃들 심지어 동물들까지 헌신적으로, 사랑으로 대한다.
그녀가 애정을 주는 방식은 한마디로 거칠다. 불쑥 과감히 선을 넘고 들어와 자신의 사랑을 던져놓는다. 이를 거부할 시 ‘나’의 표현에 따르면 ‘카노사의 굴욕’을 겪어야 한다. 특히 폐품으로 버려진 개 조각상을 집으로 들여놓고 이를 치워버리자 어마어마한 분노를 보이는 장면에서는 누구나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메렌츠에게는 선을 넘어오는 만큼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기묘한 감정을 교차하게 한다. 개 조각상을 거부하는 ‘나’에게 에메렌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최소한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주인님이 두렵다고 말씀하세요.”, “아마 나중에 나이가 들면 당신 자신의 취향도, 용기도 생길 날이 있을 거예요.” ‘나’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두려움, 드러내지 않는 취향을 에메렌츠는 명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본인이 에메렌츠를 호의 이상의 감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군가 나만의 경계선에서 간을 보고 있을 때는 잔뜩 긴장하고 날을 세우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무방비하게 허물어질 때가 있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을 준 사람들은 대부분 경계선을 과감히 무너뜨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점점 좁아지는 관계와 굳건해지는 마음속에서 선을 넘나드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침범당했을 때의 불쾌감이 두려워, 나를 드러낼 때의 나약함을 보이는 게 무서워 점점 딱딱하게 굳어간다. 에메렌츠가 선을 넘는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또 그리워지는 건 무슨 마음일까.
<도어>는 어쩌면 에메렌츠의 비밀스러운 집 대문보다, 마음의 ‘문’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타자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마음의 문.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지는 이 ‘문’을 여는 것은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과 희생으로 살아온 에메렌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에메렌츠가 조금씩은 깃들길. ‘선을 넘는 것’에 조금은 관대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