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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에 다닌다는 것

경제적 지위가 명문대 입학에 미치는 영향

전에 모임에서 알게 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학을 입학할 때, 가장 기쁜 건 수석 입학자가 아니라 문을 닫고 들어오는 학생이라고. 나 또한 그렇다. 운이 좋게 과분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평생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입학하는 순간부터 왠지 문을 닫고 들어온 사람은 나일 것만 같은, 무언의 확신이 생겼다.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 아니다. 정말 팩트다. 동기들은 기본 스탯(?)이 나보다 높았다. 일단 외고, 과고 출신들이 정말 많았다. 서울 끝자락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과서만 죽도록 팠던 나에 비해 친구들은 많은 것을 미리 공부하고 들어왔다.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한다던가, 어려운 수학 공식을 척척 풀어내는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던가, 포기하는 일 없이 집중력 있게 공부하는 스킬 덕에 모든 수업에서 A+를 휩쓴다던지. 나는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이런 집단 속에 있어도 되는지 어리둥절할 때도 종종 있었다.


사실 이런 차이는 지금도 느끼고 있다. 기본 스탯이 달랐던 것처럼, 취업이나 진로에 있어서도 바라보는 시야가 다르다. 일례로 '회사'라는 집단을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이직이 최고의 도전이었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퇴사 후 해외 대학 진학 혹은 해외 취업을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도전은 경제력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또 단순히 학력과의 상관관계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본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배경을 스스로 넓혀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처지가 문득 초라해진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공하는 방법은 재능이다. 특정한 기술과 능력으로 재화를 축적하고 사회의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정당하고 공정한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본 '재능'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점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생 시절에 만점에 가까운 
토플 점수는 물론 
높은 2외국어 점수도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울과학고 같은 영재 고등학교에 가려면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를 위해 
대치동 올림피아드 전문학원에서 
1 때까지 고등학교 수학 선행학습을 마친  중국 대학들이 만든 올림피아드용 
문제집을   넘게 반복해서 풀어야 한다. 수학 천재 가우스가 다시 살아와도 
아무 정보 없이 시골에서 독학으로 영재고에 가는  불가능하지 싶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 없어도 어떤 재능은 비용이 투입되면 만들어질 수 있다. 이것은 이미 대한민국의 사교육이 증명하고 있다. 재능에 대한 투자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투자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영원히 출발 지점이 다른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항상 앞서있을 것이다.


오로지 인터넷 강의로 수험 공부를 했던 나는 단순히 공부를 잘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지독한 행운이 따랐다는 것을 대학 생활 내내 피부로 체감했다. '왕관을 쓴 자여,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대학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매월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용돈을 벌기 위해 과외와 아르바이트를(과외는 고정, 아르바이트는 이것저것 항상 투잡이었다) 쉼 없이 하는 것은 꽤나 고된 일이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이 쉽게 따내는 A 학점은 나에게 밤을 새우고 코피를 쏟아야 볼 수 있는 학점이었다.


'잘 사는 친구들에 치여 힘들게 학교를 다닌 불쌍한 나'를 전시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정 경제적 계층이 많이 포함된 한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문유석 판사는 "중산층 이상 가정의 뒷받침 없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경쟁하기 힘든 분야의 능력을 자꾸 대입제도에 도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벌써 신분 이동이 어려운 쇠퇴기의 사회가 되어가는 징표가 아닐까 싶어 두렵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친구들과 나는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대학들에 합격 통보 속에 얼마나 많은 돈들이 묻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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