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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보편적이지 않은 이야기

영화 <마틴 에덴> 리뷰

영화 <마틴 에덴> 리뷰

영화 <마틴 에덴>은 선박에서 일하는 하류층 노동자 ‘마틴 에덴’이 상류층 계급의 ‘엘레나’를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점차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미국의 작가 잭 런던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것인데, 원작의 19세기 후반의 캘리포니아를 1950년대 나폴리로 옮겨왔다. 그럼에도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시대성이 중요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보는 내내 21세기 대한민국이 배경이었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시대성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먼 옛날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이슈였던 ‘계층 사회’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틴은 부잣집 딸인 ‘엘레나’에게 한 눈에 반한다. 엄밀히 따지면 그녀에 대한 이성적 끌림과 더불어 상류층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합쳐진 복합적인 감정이다. 마틴은 엘레나에게 당신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싶다며 본인을 이끌어달라고 한다. 그러자 엘레나는 교육을 받으라고, 형편이 어렵다면 가족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대답한다.

엘레나의 답변이 참 서늘했다. 그녀의 세계에서 가족은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풍족한 존재이며, 교육을 잘 받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고, 상류층이 될 수 있다. 엘레나의 발언은 현재 자유주의 시장이 만들어낸 위험한 착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이클 센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의 명제에 대해 과연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지 의문을 제시한다. 두 명의 사람이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하에, 한 명에게는 부모의 재력과 풍족한 환경과 같은 추가 옵션이 생긴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수십 배는 높아진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계층 상승 수단인 ‘교육’조차 자본의 힘으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제대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더욱 주목할 점은, 엘레나의 그 다음 반응이다. 성공하고 싶다는 마틴에게 엘레나는 사환에서 시작해 회계사로 성공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마틴에게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하지만 엘레나 집안의 사람들이 그 회계사를 바라보는 태도는 어쩐지 이상하다. 묘한 동정의 시선과 권력적인 종속이 느껴진다. 회계사는 본인들이 만든 프레임에 반기를 들지 않는 절대적인 복종의 위치를 고수한다. 그는 절대 상위 계층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 상류층이 되어도, 또 다른 계급으로 구분해 차단한다. 그렇기에 작가이자 사회주의자로 변모한(기자의 오보였지만) 마틴에게 과거의 무식한 선원 마틴보다 훨씬 경계심 가득한 태도를 보인다. 소름끼치게 비겁하고 모순적인 상류층의 위선이다.

이 영화는 계층 간 갈등과 모순, 그리고 자유주의 및 능력주의가 가진 모순을 ‘마틴’이라는 노동자 출신을 통해 선명하게 포착해낸다. 마틴이 어려운 하층민의 삶을 묘사해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으면서 사실 누구보다 열렬하게 상류층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태도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21세기에도 충분히 일어날법한 마틴 에덴의 세상. 아마 100년이 지난 시대에도 느끼는 감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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