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끼리 달리기 여행

우리는 달리기 친구, 달친

by 커피맥주

이보다 더 알찬 여행이 있을 수 있을까요?

주말을 끼고 알차게 다녀온 후지산 마라톤 여행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먼 거리,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와 추위 때문에 절대 뛸 생각도 못 했을 대회였어요. 하지만 모두 함께여서, 서로 도와주고 배려해 준 덕분에 그 먼 곳까지 다녀올 수 있었고 결국은 모두 다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녀본 적이 없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고, 대학 이후로는 전공 특성상 여학생이 거의 없었어요. 직장에서도 늘 여자는 많아야 2~3명, 지금 제 분야 전체를 봐도 적어요. 그러다 보니 가까운 친구들도 남자들이 훨씬 많고, 10여 명에 가까운 여자들과 수다를 떨고 쇼핑하고 밥을 먹으며 여행한 경험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베를린 런트립이 처음,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제게 신박하고 소중한 경험일지 상상이 되시나요??
그런데 베를린 마라톤 때는 뭔가 결의에 차서 목표를 향해 달리는 분위기의 여행이었다면, 이번 도쿄 런트립은 일상이 녹아든 편안함과 과정 자체가 다채로웠던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목적 지향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타입인가 봅니다. 기록 단축을 위해 훈련을 열심히 하고 비장하게 달리기보다는, 훈련이 좀 부족해도 대회 당일의 바이브, 새로워서 궁금한 코스 체험, 함께 호흡하며 달리는 사람들, 길거리의 응원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느끼는 감사함과 순수함이 좋아서 풀 마라톤을 하는 쌉F 러너입니다.
물론 이번 레이스는 너무 추워서 정말 힘들기는 했어요. 저는 땀이 굉장히 많이 나는 스타일인데 날씨가 문제였던거죠. 비 오고 추운 날씨 탓에 옷을 껴입고, 바람안통하는 바람막이를 껴입었는데, 옷 안에서는 땀이 퐁퐁퐁 솟아났습니다. 바람막이 옷을 입은 채 달리니, 땀이 배출되지 못하고 옷안에 송글송글 맺혀 가끔 팔을 털어서, 옷속의 땀을 떨어냈습니다. 그렇다고 얇게 입지도 못하는 게, 땀이 마르면서 너무 추워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끝까지 우비를 입고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걷자니 춥고, 뛰자니 힘들고, 옷은 위아래로 흠뻑 젖어버린 상황이였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의 풀 마라톤을 해낸 것이 그냥 좋습니다. 어디 내세울 기록도, 뿌듯할 만큼 훈련을 많이 한 것도 아니지만, 그 긴 시간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건네준 말들과 간식들, 그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툰 일본어지만 소통하며 '파이팅'을 외치던 순수한 그 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그 풍경들, 그 숨결, 같이 달리고 있는 사람들과의 눈빛 교환까지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함께 간 여러분들덕분이였어요. 내일 마라톤이 있다고 해서 맥주와 커피를 참지 않는 그 편안함이 좋았습니다. 같이 커피 마시고 맥주도 실컷 마셔주는 '달친'들과 함께라서 너무 편했습니다. 일본어를 잘하고 길도 잘 찾고 쇼핑아이템도 마구 던져주는 달친들 덕분에, 저는 그저 따라가 맛있는 것을 먹고, 맘에 드는걸 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다음번에 세나님이 가자고 하는 일본 달리기 여행도 일정만 맞으면 무조건 따라 갈거에요. 더 열심히 놀기 위해서 체력도 기르고 달리기도 연습해야겠습니다. 천천히 달리니 부상도 없고, 잘 먹고 잘 쉬니 회복도 빨라 일상 복귀에도 무리가 없어서 좋아요.
정말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여러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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