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리는가?
내 친구들, 가족들은 늘 묻는다.
도.대.체. 왜. 풀.마.라.톤.을. 하.는.거.야? 왜.?.
5시간을 달린다고? 왜?
글쎄, 우리는 왜, 그리고 나는 왜 마라톤을 달릴까? 풀마라톤을 처음 완주해 보면 왜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지 그 이유가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그 이전에 몇번 달려본 하프거리의 마라톤은 진짜로 누구나 어떻게든 달릴 수 있다. 타고난 체력, 타고난 끈기, 혹은 악으로 깡으로도 버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완전히 다르다. 25km, 30km, 35km를 지나면 더 이상 타고난 것으로 가기에는 너무 힘들다. 지금까지 쌓아온 준비와 훈련, 꾸준한 건강 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멘탈이 그 구간을 결정한다. 어떤 주자는 하프까지는 매우 빠르게 달리다가, 결국 초반 오버페이스로 인해 후반부에서 무너져 아예 완주를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라톤은 인생 같다고 느끼게 된다. 우리네 인생의 전반부는 타고난 기질이나 환경(부모의 경제적 지원, 태어난 곳 등) 덕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인생 후반부로 갈수록 진짜 내안의 준비와 마음가짐이 후반부 삶의 질을 결정한다.
2023년 11월 JTB마라톤에서 첫 풀마라톤의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순간, 죽을 만큼 힘든 끝자락에서 겨우겨우 한 걸음씩 내딛고 그 발걸음을 이어서 완주했을 때, 나는 인생을 한번 온전히 다 살아낸 듯한 묘한 감정을 경험했다. 너무 힘들어서 죽다 살아났다는게 아니라, 마라톤의 시작과 끝이, 내가 인생을 태어나 그 끝을 맞이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우리 진짜 목숨이 달린 인생은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없지만, 마라톤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후, 그 다음 대회에서 다시 해볼 수 있다. 다른 전략, 다른 마음가짐, 다른 준비상태로. 그래서 다시 한번 더 그 힘든 풀마라톤을 달리고 싶어진다. 이번에는 이렇게 달려보고 싶고, 다음에는 조금 더 잘해보고 싶고, 다음번에는 더 아름다운 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희망이 생긴다. 느리더라도 즐겁게, 혹은 더 빠르게, 혹은 더 여유롭게. 그렇게 여러 방식의 인생을 체험해 보듯, 다양한 방식의 마라톤을 시도하고 싶어진다. 마라톤으로 내가 살아보고픈 다양한 인생을 리허설해보는 느낌이랄까?
다시 한번 인생을 살아보듯이 다시 한번 풀마라톤을 뛰어보면서 가장 크게 깨닫는 건 레이스 후반부에서의 ‘응원의 힘이다. 더 이상 한 발짝도 못 나갈 것 같은 순간, 누군가의 “힘내요!”"화이팅" "쥐어짜" 한마디가, 건네준 물 한 컵이, 레몬 한 조각이 진짜 놀랍게도 다리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더이상 못달릴것처럼 죽을 듯이 힘든데도 길가의 누군가가 배번표의 내 이름을 불러주는 소리 하나에 다리가 갑자기 (잠깐)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지루한 명언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후반부의 인생은 내가 준비한 만큼의 내 실력으로 버텨나가는 것도 맞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너무 힘들어’라는 지치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나처럼 생각이 많고, 머리속 안테나가 많이 켜져있는 사람은, 사람관계가 많이 얽혀질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인생이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그때 내가 필요한 건 거창한 전략과 대단한 조언이 아니라, 옆에서 잠시 호흡을 맞춰주는 존재, 나에게 관심을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에 그 순간 다시 조금 더 살아낼 힘이 생겼다.
돌아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하는 것을 좋아했다. 워낙 순발력도 없고, 승부욕도 없기에 운동을 잘 못해서 였는지, 반대표 운동선수로 뛰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반 친구들을 위해 음악을 고르고, 응원도구를 만들어서 반대항 경기를 하는 동안, 앞서서 노래에 맞춰 목소리 높여 응원을 했다.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였어도, 우리 반이 이기면 누구보다 기뻤다. 농구장, 야구장에 찾아가 단체로 하는 응원도 좋아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하는 올림픽을 밤새 보며 혼자 울며 웃으며 응원하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를 응원해주는 일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나는 간접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지랍 넓은 성격상, 지금도 주변의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진심으로 힘내라고 응원하는 것이 보람되고, 기쁘다.
올해 베를린 마라톤을 준비하던 여름은 유난히 힘들었다. 갱년기 증상이 절정이라 얼굴과 목으로 땀이 쏟아져 내려 달리기 훈련을 하러 나갈 때면, 손수건을 두 개씩 들고 다녀야 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하루종일 흘린 땀으로 몸이 지쳐 있었고, 갱년기 증상의 하나인지 허리 통증은 운전할 때도, 앉아 있을 때도, 달릴 때도 나를 간간히 괴롭혔다. 작년까지만 해도, 30km 넘는 장거리 훈련을 느리지만 무난히 해내곤 했는데, 올여름에는 15km만 넘어도 허리가 빠지는 듯해 중간에 여러번 누워야 했다. 그래서 20km 이상의 장거리 훈련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베를린마라톤에 나가게 되었다. 허리 뒤쪽엔 넓은 파스를 여러개 붙이고, 그외에도 동전파스를 구석구석 붙이고, 진통제를 먹고 출발했지만 그 날의 더위는 정말 힘들었다. 역대 베를린 마라톤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이였다고 했다. 그런데도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마사지 스팟을 만나 잠시 누워 마사지를 받았던 그 10분이 후반부를 버티고 달리게 해준 작은 기적과 같은 위로였다. 낯선 외국인 청년에게 내 땀에 젖은 몸을 맡기고 마사지를 해달라고 하는게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 때의 쉼이 없었더라면, 그때 그 노랑머리 독일 청년의 마사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후반부를 달릴 수 없었을 거라 장담한다.
첫 마라톤을 달린 후, 이 년후인 오늘, 나는 다시 한번 JTBC 마라톤 주로에 섰다. 이번엔 응원을 하기 위해 나갔다. 레몬을 썰어서 통에 담고, 따뜻한 배꿀차를 보온병에 넣고, 눈에 잘 띄는 알록달록 가발을 쓰고, 심장뛰게 만드는 "질풍노도" 음악을 크게 틀 수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메고, 비장하게 나섰다. 이년전 비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지는 천호대교를 추워하며 달렸던 기억이 나서, 여러개의 핫팩도 챙겼다. 주로에 급수대가 여러개가 있긴 하지만, 그 타이밍을 놓쳐 목마를 수 있는 주자들을 위해 급수 부족을 대비한 물도 가져갔다. 마라톤 후반부에 목이 타는 그 순간, 누군가가 내게 건네주는 한 모금의 물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34km 지점 근처에서 주자들을 기다렸다. 통증으로 뭉쳐진 아픈 다리를 무겁게 들고 고통에 차서 달리는 사람들, 마치 지금 막 달리기 시작한듯 여전히 몸은 가볍게 달리지만 힘들게 찌그러진 표정으로 달리는 사람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멍때리는 표정으로 하염없이 걷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건넨 레몬 한 조각과 물 한 컵, 절실한 마음으로 마구 뿔려대는 스프레이 파스 한 번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몇 발짝 더 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거라 확신했다. 나중에 내가 건넨 종이컵의 반잔의 물이 생명수처럼 귀했고, 내가 같이 따라가 달려가 건넨 레몬 한조각이 정신들게 했다는 달리기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찼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풀마라톤을 달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느리든, 빠르든, 걷든, 달리든. 풀 마라톤을 달려 보면 누구나 알게 될거다. 모르는 사람의 스쳐가는 듯한 응원도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걸.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아는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은 얼마나 더 큰 힘이 될까. 그리고, 그런 응원이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풀마라톤을 한번 뛰고 날때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작은 말이든, 옅은 미소든, 스치듯 인사라도. 택배 기사님, 경비 아저씨, 카페 사장님,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의 풀코스를 달리고 있다. 한번 달리면, 다시 해 볼 수 없는, 그냥 마지막 피니쉬 라인으로 들어가버리는 풀코스 마라톤을. 그 가운데서 누구도 쉽게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없다. 다 다른 전략과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다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 우리가 마라톤 주로에서 누군가에게 하지 않는 말, “왜 더 빨리 못 뛰느냐, 왜 웃지 않느냐, 왜 자세가 그러냐” 같은 불필요한 말은 인생에도 필요 없다. 그저 “힘내요, 끝까지 갈 수 있어요”라는 응원 한마디면 진짜 충분하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마라톤은 다시 달릴 수 있고, 이번에는 달리고 다음번에는 응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늘 쉽지 않은 다짐을 한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가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 깊이 닿는 따뜻한 응원을 건네는 사람이 되겠다고. 우리가 모두 인생이라는 긴 풀코스를 각자의 속도로 애써서 달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풀마라톤 대회를 신청한다. 마라톤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음 마라톤에서는, 느리더라도 좀 더 즐겁게 달려봐야지~~ 아니, 이번엔 준비를 많이 해서, 좀더 빠르게 달려볼까?
그리고, 남은 내 인생은 어떻게 살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