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예뻐 보인 지는 오래됐다. 이제는 오래된 거리도 맘에 든다. 힙한 카페가 들어오고 담벼락을 알록달록 칠하기 전의 거리. 골목은 휘어지고, 바닥의 시멘트는 깨져 울퉁불퉁했지만 더럽지 않았다. 칼국수 가락처럼 납작한 스테인리스 조각을 가득 싣고 가는 리어카를 천천히 따라갔다. 작은 백반집 앞에서 총각무를 다듬던 할머니의 등 뒤에 있던 화분에는 진홍빛 꽃이 만발했고, 시멘트 담 위에 걸린 다섯 개의 낡은 벽시계는 각각 저마다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 조그만 분화구처럼 가라앉아 커다란 빌딩의 그림자들이 쉬어가도록 다 품어주고 있었구나. 대봉, 금강, 협성, 우주, 성삼, 고려, 미래, 향촌······. 오순도순 모여 있는 업체들의 이름이 정겨웠다. 곧 없어질 동네라고 하던데 이렇게 아름다우면 어떡하나. 나는 아쉬워 그 골목을 촘촘히 쏘다녔다. 까만 아기 고양이가 햇빛에 앉아 졸다가 종종 나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