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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May 06. 2019

독일 자동차 회사의 휴가 전략

당신은 어떤 휴가를 원하나요? 

독일 자동차 회사의 휴가 전략



여름휴가를 갔다 돌아오니 백 개가 넘는 메일이 쌓여 있었다. 사실 휴가 중간쯤부터 회사 갈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휴가 끝물엔 사내 메일을 확인하고 회신할 내용을 구상하기까지 했다.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애덤 알터 교수는 그의 테드 강연에서 독일의 자동차 회사 ‘다임러’의 훌륭한 휴가 전략을 언급한다. 장기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면, “지금 휴가 중이니 나중에 답장하겠습니다.” 대신에 다음과 같은 자동 회신이 간다. "지금은 휴가 중이니 보낸 메일을 삭제했습니다." 이런 <휴가 중 메일> 시스템은 휴가 중 수신된 메일을 자동으로 지워줄 뿐만 아니라, 발신자에게는 대체 담당자 연락처를 자동으로 발송해준다.


이 사람은 당신이 방금 쓴 메일을 영원히 보지 못합니다. 
2주쯤 후에 다시 메일을 보내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보내시든가요.




회사의 일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휴가를 가면 마냥 즐거울 수 없다. 휴가 이후엔 미루고 외면해온 일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일, 이런 상황에서 휴가는 힐링이 아니라 도피가 된다. 


업무에서의 무한궤도는 사람을 탈진시킨다. 직장 생활의 장기 레이스를 위해선 중간중간 리스타트할 수 있는 Stopping cues(정지 신호)가 필요하다. 휴가 땐 휴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ps. 정지 신호 없이 일한 사람이 보통 한 번에 정지를 하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가  



"가족사랑휴가"라는 명칭의 1주일 휴가를 냈다. 오랜만에 장기 휴가를 내고서 여행도 가지 않고 가족도 사랑하지 않고 혼자 여유로운 휴가를 보냈다.


회사에서 다들 이번엔 어느 나라에 갈 거냐고 묻는다. 아무 곳도 가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래, 그런 시간도 필요하지.." 하면서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비행기표를 끊으라고 재촉한다. 직장인에게 장기 휴가란 쉽게 돌아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다만 이렇게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는 새로운 경험을 할 여분의 정신이 없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식의 시간만이 절실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며 빈둥댔는데 휴가가 벌써 다 지나갔다. 회사에서 다이어리에 써진 투두 리스트를 하나씩 지울 때는 하루가 그렇게 길었는데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시간은 잘 의식되지 않는다. 지금 내 8평 원룸은,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자면, 작은 비시간적 공간(non-time space)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곳, 
시계와 달력의 저편에 영원히 존재하는 완벽한 고요,
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인간적 존재가 조용히 머무는 곳, 
시간의 한 복판에 버티고 있는
 이 작은 비시간적 공간 non-time space이여!”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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