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살인마의 새벽

임우유의 글

by 사과집

꿈 같다, 여자는 생각한다. 여자의 나이는 삼십 대 초반. 단발머리를 한 여자는 화장을 한 겹 덧댄 얼굴이다. 여자는 하얀 백지 같은 공간을 휘적휘적 걸어 나간다. 앞엔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 나올 때까지 꾸역꾸역 걷는다. 걷다가 멎은 발걸음 앞에는 기이한 모양으로 단어가 굽은 듯 서 있다.


이제 여자는 ‘신랑’ 앞에 서 있다. 단어 그대로의 ‘신랑’이다. 新郞. 여자는 한자어로 신랑을 말할 때 ‘새 신’을 쓴다는 걸 알고 있다. 신랑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신랑 생일상’, ‘신랑 생일선물’ 같은 것들이 따라 검색된다는 것도. 여자는 직장에서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자주 말하던 이 단어를 몇 번 곱씹는다. 신랑한테 애 맡기고 나가서 잠깐 놀다 들어갔지, 시댁이랑 며느리 사이는 신랑이 잘 중재를 해줘야 하는데, 하는 시답잖은 대화들이 잠시 번쩍하듯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여자는 직장에서 만난 남자 선배들의 대화에서 ‘신부’라는 단어가 오르내린 적이 있었나 잠시 골몰한다. 없다. ‘신부 화장’ 정도를 말할 때나, 결혼 준비하러 가는 곳마다 ‘신부님’, ‘신부님’ 하기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고 푸념할 때 들어본 것이 전부 같다. ‘신부’는 결혼 준비와 함께 탄생해 결혼식장에서 소멸하는 단어로군. ‘신랑’은 왜 십수 년 전 결혼식장을 빠져나온 기혼자 사이에서도 명줄이 붙어 있는지 여자는 알 수 없어진다. 아연한 마음으로 여자는 우뚝 선 ‘신랑’을 몇 번 맴돈다. 죽여도 되나, 죽일까. 여자는 ‘신랑’을 죽이기로 한다. 여자는 ‘신랑’을 죽였다. 백지의 무대를 다시 걷는 여자의 발걸음에선 경쾌한 소리가 난다.


다음 발걸음은 ‘집사람’ 앞에 멎는다. ‘집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사람 같고, 직장이 없는 사람 같고, 어딘가 여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여자는 ‘집사람이 애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거나 ‘우리 집사람이 잔소리가 심해서’ 괴롭다고 불평하던 남자 선배들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개중에 대부분은 맞벌이 가정이었는데 왜 아내는 ‘집사람’일까 여자는 종종 궁금해했다. 이미 결혼한 여자는 자신의 반려자가 바깥에서 혹 자신을 ‘집사람’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지도 궁금해진다. 사회생활에선 여자가 훨씬 선배인데도 고작 ‘집사람’이라고 불렸을까 봐 여자는 잠시 기분이 나빠진다. ‘집사람’ 앞에서 여자는 미간을 찌푸린다. 죽여야 하나, 죽이지 말까. 여자는 한참 고민하다 ‘집사람’의 외형에 묻은 여성의 모습을 떼어낸다. 무성(無性)의 ‘집사람’을 뒤로 한 채 여자는 다시 걷는다.


여자는 이내 ‘시댁’ 앞에 선다. ‘시댁’의 옆에는 ‘처가’가 있었는데, 풍채 좋은 어르신 같은, 궁궐 같은 집 모양의 ‘시댁’에 비해 ‘처가’는 처마 끝도 삭아 있는 허름한 모양새에 크기도 작다. ‘시댁’의 옆에는 ‘처댁’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여러 해 의문을 품어온 여자는 ‘시댁’의 크기에 압도당한 기세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시댁’을 바라본다. 여자는 ‘시댁’ 뒷면에 딸린 다른 단어에도 눈길을 준다. ‘아가씨’가 있고, ‘도련님’이 있고, ‘아주버님’도 있다. ‘아가씨’나 ‘도련님’ 또는 ‘아주버님’에 비해 ‘처남’과 ‘처제’ 따위는 보잘것없이 작게 웅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종속된 종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상대의 집안을 올려 불러야 할 일이, 아니, 종속된 종의 일가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얕잡아 불러야 할 일이 있던가. 없는 것 같다. 여자는 ‘시댁’도 죽이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댁’을 부순다. 그리고 ‘가’를 주워와 그 자리에 그대로 둔다. ‘시가’와 ‘처가’가 이제야 비교적 닮은 크기와 외형으로 서 있다. 여자는 흡족한 얼굴로 계속 걷는다.


일순간 발에 닿는 백지의 공간이 점점 좁혀진다. 여자는 백지의 무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감지한다. 무대의 막다른 길을 손톱만큼 앞두고 여자는 멈춰 선다. 아직 못 죽인 단어가 있나, 여자는 다시 걸어온 무대 뒤를 되밟아본다. 더 죽일 단어가 없었나. 길을 돌아가는 여자의 머릿속에 여자의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받았던 질문이 들어찬다.


“넌 다시 태어나면 여자 되고 싶어, 남자 되고 싶어?”


어린 여자는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곤 웃었다. 여자는 꾸미는 걸 좋아하는데, 남자면 꾸미고 다니지 못하니까 여자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의 질문을 떠올린 여자는 차갑게 웃는다. 어렸던 여자가 커가는 사이 다시 태어나면 곧 죽어도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졌던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므로. 때때로 그런 일들은 밀알만큼의 의지도 없이 겪어지기도 했다.


이어서 걷는 여자의 등 뒤로 백지의 무대 끄트머리가 부서져 내린다. 점점 거세게 내려앉는 무대의 가장자리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이 초점 없이 흔들린다. 더 죽여야 하는데, 아직 더 죽일 것들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여자의 조바심은 무대의 거친 붕괴만큼 빠르게 쌓인다. 서 있는 백지의 무대는 이제 몸 바깥으로 한 뼘밖에 남아있지 않다. 여자는 이것이 곧 꿈의 끝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거실. 까만 밤이다. 누워서 눈만 말갛게 뜬 여자는 별 희한한 꿈을 꿨노라고 생각한다. 마음먹고 뭔갈 다치게 해본 적도 없으면서 꿈속에서 사람 죽이듯 단어를 죽이다니. 별 꿈을 다 꾸는군. 여자는 떠올리다 만 어린 시절 질문을 또 받는 상상을 한다. 꿈속에서 마저 찾지 못한 단어들까지 찾아 다 죽여버렸다면 후련하게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여자가 누운 소파의 가장자리가 이내 암순응한 여자의 눈앞에 점점 선명해진다. 공들여 골랐던 정교한 다리를 가진 소파 테이블을 지나 거실 너머 복도 끝엔 여자와 여자의 남편의 웨딩 사진으로 만든 액자가 벽에 기대고 있다. 이상한 허무함이 잠시 몰려들어 여자는 낮게 실소를 터뜨린다.


여자의 낮은 웃음 사이로 어둠이 느릿한 속도로 걷힌다. 아침은 눈부시게 밝을지도 몰랐다.





임우유

세상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지만 정말 모든 게 다 궁금하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대부분 소심하고 소부분 대담한 면이 있습니다. 독립출판물 《너와 이혼까지 생각했어》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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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사진 : Laurie Simmons, Pushing Lipstick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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