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없는 답

사오메타의 글

by 사과집

이사가 결정되고 인테리어가 시작되었다. 집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던 중 학창시절 <이소라의 음악도시> 디제이 이소라가 들려준 방이 떠올랐다. 짙은 보랏빛 커튼이 둘러진 어두운 방 한 가운데 놓인 침대에 누운 기분이 어떨까하고. 어두운 소재의 티크 바닥재를 고르고 진회색 타일을 붙였다. 하얀 벽지를 제치고 LG에서 나온 회색 실크벽지가 대세로 떠오르자 ‘집은 하얘야 한다'는 말에 반박하지 않아도 됐다. 그 앞에 갈빛 가죽 소파를 놓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창가엔 암막효과가 80프로인 남색 커튼을 달았다. 커튼을 젖힐 때마다 새로운 무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도 커튼을 젖혔다.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야 할 곳이 있는 듯 먼 데를 응시하며 건너편 아파트 15층 난간에 앉아있었다. 아무 것도 잡지 않은 채 두 손은 난간을 가벼이 짚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품에 안긴 채로. 지척에 있는 거리임에도 그녀는 나를 압도했다. 나는 괴성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자고 있던 남편은 내 소리에 놀라 방에서 뛰쳐나와 연이어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휴대폰을 찾아 112에 전화를 걸어 떨리는 음성으로 상황을 전했다. 그녀는 내가 보이지 않을 텐데 일어서면 그녀가 놀라 떨어질 것 같아 조심히 몸을 세웠다. 그리고 문을 열어 소리쳤다. “저기요!!!!!” 흠칫 놀란 그녀의 눈엔 초점이 생겼고 난간을 잡고 뒤로 돌아 뛰어 내려갔다.


난간에 앉아있던 그녀 모습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커튼을 열어 햇빛을 반길 자신이 없었다.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몸을 세워 어두운 커튼 안에서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밤 사이 갈았던 기저귀는 축 쳐져 쓰레기통에 넣고 새 기저귀를 채운다. 적당한 온도에 맞춰 고르게 섞여 거침없이 나오는지 분유를 확인한다. 아기가 다 먹으면 손에 장난감을 쥐어준다. 영양성분에 맞게 고기를 갈아 쌀가루를 넣고 다진 야채를 끓여 이유식을 만들면 한껏 피곤해진 아기는 졸린 지 하품을 한다. 하품하는 아기를 안아 재우면 나도 스르르 잠이 든다. 잠시 잠을 잤을 뿐인데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퇴근한 남편이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뚜벅뚜벅 걸어 정신의학과 문 앞에 섰다.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수없이 질문했다. 하는 답변마다 억울함 투성이였지만 의사는 그건 감정일 뿐이라고 제쳐두기로 했다. 우울을 증명하기 위해 대답하고 문진표를 작성하며 진단을 기다렸다. 의사는 내 사정을 들었을 뿐인데 호르몬 이상이라고 했다. 뇌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불안정으로 양극성(bi-polar)라고 진단하고 약을 처방해줬다. 의사는 여성이 육아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오는 산후우울증이니 정신병력으로 쳐주지 않는다고 걱정 말라 나를 독려해 주었다. 북돋아 지지 않는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자연스러우면 왜 병원을 찾고 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해 주는가. 묻지 못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리고 15층 난간에 앉아있던 그녀는 잘 있을까. 당사자의 안부 정도는 물을 수 있을까 하여 파출소에 들렀다. 개인정보라 이야기 해줄 순 없지만 사건예후는 걱정하지 마라는 예상했던 답을 듣고 나왔다. 혹시 몰라 검색 했던 뉴스엔 보름 전, 길 건너 단지 아파트 8층 난간에 뛰어내린 여성이 있었다. 품에 있던 아이는 사망하고 엄마는 살았다고 했다. 그녀가 그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그녀인 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왜 그녀들뿐인가. 허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이 유난히 어두웠다. 짙은 커튼과 어두운 바닥과 회색 벽지 사이에서 하얀 가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왜 자연스럽지 않은 건가. 왜 우리는 자연스럽지 않은 건가. 답 없는 질문만 허공을 맴돌았다.




사오메타

좋아하는 게 많아 매일 바쁜 한국인



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사진 : Chantal akerman - Jeanne Dielman(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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