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짓우의 글

by 사과집

편도선 비대증으로 툭하면 고열이 나서 고생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와 5살 차이나는 언니가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어렸었다’는 것만 기억나는 정도의 어렴풋한 예전이기에 아마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아프면 식욕도 떨어지고 누워만 있지만 어릴 때만 해도 아파도 밥도 먹고 약 기운이 돌면 평소처럼 놀기도 했던 것 같다. 열이 많이 나던 그날도 그랬다. 밥을 내가 먹었다기 보다는 누군가 먹여주었을 것이고, 아주 쓴 약은 아마도 가루약이었겠지. 숟가락에 가루약을 담고 물을 약간 떨어뜨려 묽게 하여 먹곤 했다. 그렇게 먹으면 묽은 가루약이 온 혀에 닿아서 쓴맛이 증폭되지만 완전한 가루약도, 그렇다고 알약도 온전히 삼키기 힘든 어린아이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애써 삼킨 약을 쓰다고 토해내 버리면 고통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저 꾹 참았다. 약까지 잘 버텨낸 나는 과일을 먹는 언니 옆자리에 앉아 내 앞에 놓인 포크를 집었다.


“너 그러다 지옥간다.”


내가 입에 문 과일을 다 삼키기도 전에 할머니의 귓속말이 내 귀에 꽂혔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포크였다. 분명 그랬다. 무슨 과일을 먹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포크만큼은 정확히 기억난다. 손잡이에 갈색 무늬가 있는, 그 자리에 있던 식구들 중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포크. 대여섯 살의 몸뚱이로 고열까지 버텨가며 쓴 약도 잘 먹은 내가 과일은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포크는 어른들만 사용하는 물품이었던 것일까?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만 얘기할 수 있고 나는 들으면 안 되는 어른들만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인데 내가 끼어든 것이었나? 아니다. 그러기엔 언니도 어린이였다. 할머니의 귓속말은 내가 사용한 포크를, 옆에 앉아있던 언니가 덩달아 사용한 후에 날아왔다.


“너 그러다 지옥간다.”는 귓속말. 나만 들리게 귓속말을 한 할머니는 다시 과일을 먹었다. 그 말을 나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기에 어안이 벙벙한 것은 나뿐이었다.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할머니는 늘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방에서도, 하루를 마감한 뒤 베란다에 나가서도, 우리 모르게 마당에서 연초를 태우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묵주였다. 늘 주님에게 무엇을 그렇게 바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옥에 주님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나였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주님이 없는 지옥에 날 보내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일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와 할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할머니, 제가 왜 지옥에 가요?”

“너 때문에 언니가 아프면 어쩌려고 그러니? 넌 정말 못됐구나.”


젠장. 이 부분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와 당혹감이 몰려오는 것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할머니의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은 둘째 치고, 그 당시 나는 너무 두려웠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엄마 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엄마에게 앞뒤 없이 설명하며 처음부터 울었는지 말하다 중간에 눈물이 차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엄마 품에 안겨있었고 엄마도 함께 울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말을 시작한 뒤 꽤 초반부터 울었다. 나는 열이 나는데 울기까지 하다 보니 몸이 더 뜨거워졌고, 내가 안고 있던 엄마도 뜨거웠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안겼다기보다는 ‘같이’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안았는지,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는지, 어떤 연민을 느꼈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는 분명 ‘같이’ 안아주고 있었다.


사실 할머니가 언니를 더 예뻐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언니는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둘째 아들의 첫 손주이기에 소중했다. 그러나 소중한 첫째 손주도 둘째 아들의 대를 잇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들어선 둘째 손주의 배 모양은 틀림없이 아들이었다. 없는 형편에 며느리가 고기를 찾는 것이 조금 못마땅했을지라도 역시 아들을 가져서 고기를 찾는다며 의심 없이 믿고 기다린 둘째였다. 그러나 당신 아들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고기를 먹은 며느리가 ‘또’ 딸을 낳았으니, 내 생일날 생일초 대신 연초를 태우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돈은 당신의 며느리도 함께 벌었지만. 산통을 공감할 법도 한 할머니는 ‘딸’을 낳은 며느리가 있는 병원에 가볼 일도 없었고, 나에게 굳이 마음을 더 나누어 줄 일도 없었다.


나중에 머리가 크고 나서야 내가 왜 할머니에게 지옥 간다는 말을 들을 만큼 ‘특별한’ 둘째였는지 이해했다. 어디에선가 서로를 안고 숨죽여 우는 딸과 엄마가 사막의 모래알만큼 많고 흔한 것이 한국 사회 ‘가족’의 민낯이라는 것도.




짓우

생(生)은 비극이라 믿는 동시에 생을 사랑합니다. 별거 아닌 게 결코 별거 아닌 게 아님을 쓰고, 말하는 것을 좋아해요. 화가 많지만 예의를 중시해서 화를 잘 못내요. 그래서 홧병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주로 개와 술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는 공간입니다.

화가 많으신 분들~우리 똘이 보고 가세요.




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그림 : Njideka Akunyili Crosby, Blend in — Stand out(201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