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글
늦은 밤, 불현듯 떠오른 엄마를 생각해본다. 아니다, 정확히는 엄마에 대해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내 기억에는 없는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말할 때 나는 종종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여자주인공이 나온 드라마를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주인공이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떠올리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시절 나는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쌀은 세 컵, 하얀 분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쌀을 헹구고 밥솥에 옮겨 손가락의 두번째 마디까지 잠길 정도로 물이 채운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나는 된장 두 스푼에 고추장 한 스푼, 완벽한 조합의 된장찌개를 끓였다. 밥을 먹은 후에는 내일 입고 나갈 셔츠를 빨고, 마른 셔츠를 다림질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하나씩 삶의 기술을 배워나가는 시간이었다.
‘쟤는 엄마 없는 아이니까. 네가 더 잘해줘야지’집에서는 못 하는 것이 없던 나는 밖에서 줄곧 모자란 아이가 되었다. 친구와 싸워도 조금 실수해도 괜찮았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엄마가 없는 것은 이유가 되어 꼬리표가 되었다.
초등학생. 가만히 앉아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나이. 초등학교 시절, 자습 시간. 나를 놀리기 좋아하던 아이와 말싸움을 하다 언성이 높아졌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싸움은 나보다 모자란 것으로 상대를 할퀴는 치졸함으로 번졌다. 그 아이가 생각한 우월함은 엄마의 존재였을까. 아이의 입에서는 ‘엄마도 없는 게’라는 말이 날아왔다. 내가 살아온 세상에는 낭만이 없었던 걸까. 분명 내가 보았던 드라마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여주가 눈물 흘리며 입을 틀어막고 교실 밖을 뛰쳐나갔던 것 같은데, 현실은 역시나 반전이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달려들어 뺨을 갈겼다. ‘너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그렇게 사니? 나보다 잘난 게 그거 하나지?’ 내가 사람을 때리다니, 아차 싶은 순간 선생님의 등장에 나는 바로 엉엉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봤던 드라마의 장면에서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눈물을 흘려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물었고 나는 맞지도 않은 뺨을 감싸며 ‘쟤가 먼저 때렸어요.’라는 말을 했다. 시나리오상 흠잡을 곳 없는 엄마 없는 아이의 완벽한 승리. 승리의 미소를 머금고 자리에 돌아가던 순간, 나는 완벽한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나를 바라보던 반장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 밤이다.
어른이 되어서 깨달았다. 그때 내가 엄마가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은 ‘학습된 부끄러움’이었음을. 한부모가정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그때. 우리는 이혼, 별거, 사별 등의 이유로 부모 중 한 사람과 자녀로 꾸려진 가정을 정상적이지 않다고 배웠다.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을 못 가진 우리는 결핍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결핍에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상대방의 무례함을 정확히 짚어낼 때 우리는 당돌한 아이가 되었다. 한부모가정을 둘러싼 편견의 시선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가끔 학습된 부끄러움을 가질 테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던 반장에게 웃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종종 부끄러움을 느끼며, 엄마처럼 엄마가 될 자신도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엄마는 나를 참 많이, 예뻐했다고 했다.
지니
기획으로 벌어먹고 삽니다.
창작하는 삶을 열망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그림 : Chantal Joffe, Esme(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