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Istanbul, sister

감초원의 글

by 사과집

처음 터키에 간다고 했을 때 돌아온 말은 “여자 혼자 이슬람국가 여행하는 거 아니다”였다. 그때의 나는 여행한 지 8개월 차로 혼자 돌아다니기에 도가 튼 상태였다. 돌아온 말에 콧방귀를 뀌며, 그렇다면 더더욱 가야지 마음속으로 이를 갈고 터키행 비행기에 올랐다. 문제없이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를 잡아탔고, 공항은 유심 가격이 비싸 다음 날 시내에서 5일짜리 칩을 하나 살 생각이었다. 숙소까지 가는 방법은 머릿속에 완벽히 들어있어 인터넷 없이도 자신이 있었다. 아니면 물으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공항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납치를 당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마주한 장면은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디선지는 모르겠지만 ‘웨에엥’하는 사이렌 소리와 낯선 언어로 된 공지가 울려 퍼졌다. 큰 트렁크를 끌고 우왕좌왕하는 여행자에게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영어였다. 반가워서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지금 IS 테러가 의심된대. 혹시 방금 터키에 도착했니? 택시를 이용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저쪽에서 택시를 탈 수 있어!” 택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입안이 썼다. 의심이 먼저 들었다. 이거 택시 영업인가? 여행이 좀 길어진지라 돈이 넉넉하지 않아 곤란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 사람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 순간 내 트렁크를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얼결에 따라간 택시는 별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택시가 출발하는 순간, 조수석에 쓰윽 하고 머리 하나가 더 올라왔다. 택시는 기사와 손님이면 충분한 게 아니었나? 왜 조수석에 누군가 더 타고 있지? 심장이 요동쳤다. 태연한 척 핸드폰을 꺼냈다. 구글 지도의 멋진 점은 인터넷이 없어도 지도를 미리 다운받아 놓으면 gps에 기반해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것을 기점으로 명확하게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번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고는 물론이거니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단도 없었다.


차가 어떤 다리를 지날 때였다. 나는 조용히 지갑에서 카드와 현금을 꺼내고 손에 쥐었다. ‘있지, 아무래도 내 호텔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나 여기에 내려줄래?’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들은 마주 보고 씨익 웃고는 계속해서 달렸다. 나는 차창을 내리고 돈을 창문 밖으로 꺼냈다. “이게 지금 내가 가진 전부거든? 꽤 큰 돈이야. 나를 내려주지 않으면 창밖으로 뿌릴 생각이야. 당장 멈춰세우고 나랑 내 짐을 여기에 내려놔. 멀쩡하게. 아니면 난 이 돈을 찢든 뿌리든 너희 손에 못 들어가게 할 거니까. 내려만 주면 얌전히 다 줄게.”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춰가며 내뱉은 말에 그들은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받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얘 완전 골때린다는 태도였다. 어쨌든 간 나는 무사히 알 수 없는 도로에 내려졌고 그들은 떠나갔다. “Welcome Istanbul, sister.” 쾌활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그게 이 도시의 환영식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래도 다행이다’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몸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강간당하지 않고 살해당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해야만 했다. 이후로도 나는 길을 막아서고 손목을 잡아채는 남자들, 밥을 먹고 있으면 묻지도 않고 합석을 해오는 남자들을 숱하게 거절해야 했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당시 건장한 백인 남성 애인이 있었고, 누군가 말을 걸어오고 붙잡아 올 때마다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한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바로 내 애인이 곧 올 예정이라 기다리고 있다고. 어떤 날은 남성 동행을 구하기도 했다. 남성이 무서워 남성을 방패 삼았다. 그러나 그 방패도 언제 창으로 돌변할지 몰라 두려웠다. 이슬람 국가에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혼자 여행 온 내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그렇게 말했고 애인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냐고. 그래서 자꾸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 진 죄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었다.




감초원

초록색 좋아하는 사람 중에 제일 웃깁니다.



브런치북 <분노의 글쓰기 클럽>은 동명의 글쓰기 워크숍에서 멤버들이 쓴 글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사진 : 김수자,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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