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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Sep 25. 2018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

내 삶은 몇 개의 챕터로 나뉠까

얼마 전 책의 후기를 메일로 보내주신 고마운 분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S라고 하겠다.) S는 메일에서 영화 <보이후드> 를 말했다. “삶이란 어느 한 순간만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해 해준 영화”였다고 한 S는, 내 짧막한 이야기를 통해 <보이후드>를 본 것처럼 내 인생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나의 글보다도 좋은 감상평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말에 깊히 공감했다. 

 

에세이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그간 써온 글을 모두 모으는 것이었다.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잡문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약 5년 간의 글이 모였다. A4용지 한 장에 한 에피소드를 넣어 인쇄소에서 뽑는데 족히 200장이 넘게 나왔다. 그 다음은 가장 어려운 순간이다. 적혀질 필요가 있었던 삶의 순간 200개를 재구성하는 일. 목차를 만드는 일은 200개의 에피소드를 분류해 일관성을 부여하고 적절하지 않은 삽화는 제거하는 일의 무한 반복이었다. 주제가 다를 때는 종이를 가위로 잘라 두 장으로 만들었고,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글은 찢었다. 


그렇게 목차와 글의 구성을 몇번 뒤집어 엎고 책을 인쇄하게 되었을 때, 나는 곧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내 삶을 어떻게 읽을까. 나는 이 이야기가 몇 개의 챕터, 덩어리로 전해지기를 바랐다. S의 말처럼 삶이란 어느 한 순간으로 정의되는게 아니니까. 하나의 사건 만으로 나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니까. 모든 글은 나를 보여주지만, 하나의 글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에 대한 섣부른 판단 없이, 그저 내 인생을 엿본것 같다는, 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는 담담한 S의 감상은 내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모든 글은 나를 보여주지만, 하나의 글만으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복잡한 사람이니까. 




삶은 순간의 총체다.


삶의 여러 순간이 삶을 구성한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고, 퇴사를 결심하면서도 계속 좌절했던 것은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내 삶의 비일관성이었다. 내가 거쳐온 사람들, 조직들, 관심사들은 산발적이었고 이력으로 묶일 만한 게 없었다. 게다가 내 삶엔 그닥 터닝포인트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내 사주는 내 삶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그저 녹록한 삶이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이런 삶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인생은 ‘사후해석’이다.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이 사람, 이 사건, 이 여행을 나는 지금 평가할 수 없다. 맥락이 생긴 나중에야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을 만든 것 역시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내 삶을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내 고질병의 산물이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이 긴 여행도 재구성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하는. 나 혼자만의 길고 외로운 여행을 결심한 이유 역시, 답이 안나오는 인생의 패턴을 찾기위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나는 S의 메일에 회신을 했다.


"인간은 패턴을 만드려는 본성이 있대요. 
지나고보니 내 인생이 이랬구나, 
과거의 점을 이어보니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인과를 부여하고 패턴을 부여하려는 속성. 

어쩌면 저는 지금 그런 시간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어지럽게 펼쳐진 지난 점들에 의미부여를 하는 여행이랄까요..."

 


 

노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서전을 내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고 한다. 삶이란 마라톤이 거의 끝나갈 때, 삶의 추억을 편집하고 자신의 생애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대니얼 클라인은 철학적인 사고력을 지닌 사람에게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진짜 노년을 제대로 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 뒤를 정리하지 않고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 흔한 인생에 어떻게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을 때. 우리는 인생을 재구성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노인이 아니더라도, 사건이 삶을 비집고 나올 때 우리는 언제든지 삶을 정리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재구성이야말로 김연수의 말처럼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않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가끔은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 치열한 삶의 풍파가 꺾이고 삶을 회상할 무한한 시간을 가질 그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추억할까. 평온히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되었을 때, 나는 지나간 삶을 몇 개의 챕터로 나눴을까. 가끔은 이 모든 생을 건너뛰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싶다. 아니, 그때 내가 만든 ‘목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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