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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14. 2019

남의 블로그에서 발견하는 인생

블로그와 여행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는 사회학자로서 구술을 분석하는 저자가 아무리 용을 써도 분석할 수 없던 무의미한 단편들이 나온다. 본인을 중증의 인터넷 중독이라고 밝힌 마사히코는 유독 블로그에서 일반인들의 방대하고 무의미한 중얼거림을 발견하기를 즐긴다. “누구에게도 숨겨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 그런 것은 데이터 매트릭스에 수없이 떠돈다.


나 역시 어쩌다 발견한 블로그를 읽기를 매우 즐긴다. 최근에는 포르투갈의 근교 도시를 검색하다 단숨에 읽어내려간 블로그 하나가 있다. 블로그의 주인은 환갑이 넘은 중년의 남성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내와의 여행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며, 몇년 전에는 동우회의 단체 여행을 기획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2주 여행의 후기를 블로그에 상세하게 올렸다. 그는 무려 28명을 이끄는 여행을 아내와 기획했는데, 출발 이틀 전에 최종 숙소 확정 톡보를 받을 정도로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통의 시간”을 거쳤다.


그래서 그의 포르투갈 여행기는 여행기라기보단 행사를 이끈 의전 담당자의 고군분투기와 가깝다. 그가 실시간으로 올린 글을 읽으면, 단체 여행의 시작과 끝을 짊어가는 리더의 부담이 절절히 느껴진다. 빈틈없이 진행을 하려고 했지만, 레스토랑에서 유명한 특정 음식을 주문하지 않은 그는 일행들이 더 좋아할 수 있었다며 “가슴을 치며” 아쉬워하는 섬세한 사람이다. 또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우는 호카곶에 갔을 때에는 과거라면 당장 시 한수가 나왔겠지만 리더라는 것이 고달퍼 아무 생각이 없으니 야생화 촬영이나 틈틈히 남기겠다는 인물이다. 일행의 부조리한 항의 때문에 아내와 본인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무척 우울했다는 후기에는 나도 같이 우울해졌다.


그렇게 나는 그 블로그를 즐겨찾기를 하고, 내가 가지도 않을 도시의 여행기까지 재밌게 읽어내렸다. 그는 블로그에 거침없이 타인의 실명을 거론했는데, 아마 본인이 이 여행을 꼼꼼히 기억하기 위함인 것 같지만 나는 더욱 소설을 읽는 기분이 되었다. 사진으로 본 그분은 등산복과 선캡, 선글라스를 장착한 중년 한국인 관광객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이 전형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상상력이 부족하고 폭력적인 말인가. 그의 일기는 전혀 전형적이지 않다. 그는 철저한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다수의 여행에 무척이나 마음을 쓰는 사람이고, 상처받은 마음을 야생화 찍기로 달래는 사람이다.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우는 포르투갈 호카곶


즐겨찾기를 하고 찾아가는 블로그가 또 하나 있다. 유럽 건축 답사 루트를 짜다 찾게 된 어느 건축학도의 블로그다. 나는 포르투갈의 소토 드 모라의 한 건축물을 답사할 예정으로 네이버를 검색 중이었는데, 그 건축학도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그 곳을 간 단 한 명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블로그는 위의 중년 남성과는 달리 텍스트가 전혀 없다. 오로지 본인이 갈 건축의 사진, 그리고 다녀온 후의 건축 사진이 나라마다 정리된 게 전부다. 나는 그가 짠 루트를 보면, 내가 책과 온라인을 뒤지며 건축가의 생애와 주요 작품을 찾던 그 시간의 부피를 이 사람도 똑같이 겪었을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홀로 친밀한 감정이 든다.


이 사람은 내가 본인이 적은 불친절한 (애초에 불친절하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트를 보며 나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것을 모를 것이다. 어쨌든 블로그 덕분에 나 역시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한 건축학도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그가 유럽 건축 답사를 다녀온 뒤 전자책을 출판했다는 것을 알게된 후, 알라딘에서 그의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PDF로 된 그의 전자책은 변환이 잘못된 것인지 글자가 모두 깨졌지만, 그가 찍은 아름다운 건축 사진을 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내가 ‘어쩌다’ 발견하기 전까지 세상에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서사를 생각하면 숨이 가빠진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물에 지나치게 도취된다. 이 돌맹이, 이 나무, 이 길, 이 나뭇잎…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바로 이 것’을 의식하는 순간 세상의 방대함에 압도당한다. 마찬가지로 블로그에 떠도는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단 하나의 서사를 발견하고 나면, 수많은 서사의 방대함에 도취된다. 그리고 그 방대함 속에서 내 서사의 무의미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시 마사히코는 그런 무의미함이야말로 아름답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도 숨겨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서사는 아름답다.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나는 "남의 블로그를 통해 발견하는 인생"을 통해 나의 편협한 상상력을 조금씩 키워나간다. 여행을 하다 중년의 한국 남성을 봐도 전형적인 관광객이 아닌, 어쩌면 야생화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상상하는 식이다. 이렇게 ‘전형성’을 깨부시게 되는 것이야 말로, 무의미하고 단편적인 서사의 범람이 주는 가장 큰 아름다움일 것이다.


어쨌든 간에, 누군가 보물찾기를 할 수 있도록 나의 이야기를 어딘가 남겨두는 건 재미있는 일 아닌가? 어떤 것은 먼저 말하고 보여주고 싶지만, 어떤 것은 나를 이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만 기꺼이 보여주고 싶다. 나의 단편적이고 무의미한 서사를 읽는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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