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집 Sep 13. 2018

퇴사하고 여행가니까 행복하니?

제일 많이 받은 질문

여행을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하나다. “행복하니?” 아, 하나 더 있다. “ 즐겁니?”
 
사실 즐거움(Joy)와 행복(Happy)는 다른 개념이다. 즐거움은 강렬하고 긍정적인 ‘순간의’ 감정이라면, 행복은 보통 ‘일정 기간’동안 기분이 좋은 것을 말한다. 내가 방탄소년단 직캠을 보면서 괴성을 지르고 깡총깡총 뛰며 아파트를 부시고 싶어하는 것은 행복보다는 즐거움에 가깝다. 재밌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즐거움을 측정할 때는 실제로 ‘깡총깡총 뛰고 싶게 만드는 감정’을 측정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행복한게 적당한 것일까? 현재의 쾌락에만 집중하다보면 앞으로 예상될 행복을 희생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지금 이렇게 여행하는게 즐거워서 나의 모든 돈과 마이너스 통장 잔액까지 없어질 정도로 몇년 간 여행을 하다 돌아오면 그때는 아마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Ingrid Fetell은 그의 책 ‘조이(Joy)’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데, 결국은 그 행복을 쫓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행복을 쫓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데, 결국은 그 행복을 쫓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적절한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나는 현재지향적으로 살아야 할까, 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 할까? 스탠포드 감옥실험으로도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드로는 그의 책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에서 시간에 대한 최적의 프로필을 알려준다. 요컨대 과거에 대해서는 높은 긍정성을 가지고, 적당히 현재-쾌락적이며, 적당히 높은 미래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과거-그러니까 가족과 정체성-지향은 우리에게 뿌리를 제공하고, 적당한 미래 지향은 새로운 목적지와 도전을 만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쾌락주의는 나와 장소, 사람들 사이를 탐험할 수 있는 관능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지금의 나는 현재와 미래 지향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여기엔 필연적으로 과거가 영향을 준다.
 



 어쨌든 다시 맨 처음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즐겁니?
 원할 때 술을 마실 수 있고 하루에 마가리타 세 잔을 먹고 노래를 들으며 호텔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어서 즐겁다. 우쿨렐레를 치면서 목청껏 노래를 부를 때 즐겁다. 방탄소년단 미국 콘서트 직캠을 보고 브이앱을 볼때 즐겁다. 마음의 드는 작가의 아름다운 페인팅을 발견했을 때 즐겁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일몰을 보고, 돌아와서 샤워하고 맥주 한캔 따는게 즐겁다. 내가 번 돈을 오롯이 나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현재라서 즐겁다.
 
 행복하니?
 개인적으로 행복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다양한 감정이 넘실대고 풍부한 상태, 많은 자극을 받고 나 자신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상태, 하고싶은게 있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나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즐거움, 외로움, 고독함, 자유로움, 충만함, 기대, 부담감.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읽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많은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낀다. 그래서 행복하다.
 
 아직 여행을 한지 20일이 채 안됐다. 그럼에도 즐거움과 행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많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과정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즐거움이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은 별로 없다. 내가 균형을 잡아야 했을 때는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행복’ 사이였을 뿐이다. 그 미래의 행복 마저 나는 장담하지 못해서 더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았다.
 
 여행을 하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즐거움과 행복 사이에 줄다리기를 하려면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돈 번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관대함, 내게 뭐가 맞는지 고민할 충분한 시간을 줄 관대함. 그 정도 관대함을 너무 늦게 가진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본인에게 관대해져 보아요.

 
 ps. 2015년생의 평균 수명은 142세라고 한다.(!)

우리도 별일 없으면 한 백살까지는 살거다.

지금 잠깐 내게 관대해져도, 괜찮다.




이전 17화 남의 블로그에서 발견하는 인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