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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Sep 23. 2018

동남아에서 추석을 느낄 때

치앙마이에서 느낀 가을

Day30/ Chiang Mai, Thailand / 9.19



치앙마이에서 추석을 느낄 때


동남아를 여행한지 30일째, 지금은 치앙마이다. 지금쯤 한국은 슬슬 니트류를 입고 부츠도 신고 쇼핑몰엔 롯데몰에 가면 채도가 낮은 가을 옷들로 가득하겠지? 구름도 없이 높은 청명한 하늘에 한강에는 사람들로 더 북적일거고, 곧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하여 마트와 시장엔 각종 세일을 하겠지. 회사에서는 스팸이나 샴푸를 명절 선물로 보내줄거고, 업무 전화를 할 때도 선선해진 날씨 얘기를 꺼낼 거고, 명절엔 어디 가시냐며, 추석 잘 보내시라는 명절 토크를 하겠지. 하지만 난 아직 여름을 사니까. 전혀 가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가을임을 느낄 때는, 메일을 받을 때다. 서점으로부터 책 입고 요청이나 출판사로부터 메일을 주고받을 때면 대부분 마지막 인사로 즐거운 추석을 보내라는 말을 해준다. “제가 해외라 재입고가 어렵습니다.. “라고 회신하면, 해외에서도 따뜻한 명절 보내라는 고마운 답장을 또 보내준다.


회사에서 메일을 보낼 때를 떠올렸다. 나는 메일의 머릿말과 맺음말에 강박이 있는 사람이었다. 시의적절한 인삿말에 대한 압박이 심해서 한참 고민하다 보냈지만, 대부분 날씨와 절기에 맞춘 흔해 빠진, 영혼없는 인삿말들이었다. 봄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여름엔 더운데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가을엔 다시 또 환절기 드립, 겨울엔 추운데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


하지만 회사를 나오고, 전혀 다른 사람들과 업무적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이 ‘상식적인 인삿말’이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부분의 독립서점은 주말이 피크다. 그런 서점에게 “그럼 주말까지 이번 한 주도 화이팅하세요!”라는 말은 뭔가 약올리는 것같아 보인다. 주말에도 일하라는거야 뭐야.. 


설과 추석은 메일 보내기 아주 편리한 기간이었다. 즐거운 설 보내세요,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좋은 명절 보내라는 말만큼 쉬운 인삿말이 없으니까. 하지만 풍성한 한가위라는게 뭘까? 한 가위, 가을의 한 가운데서 큰 날을 보내라는 뜻이다. 가족들과 음식들로 풍성한 하루를 보내세요. 하지만 한가위에 여전히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퇴사 이후엔 메일을 보낼 때 다시한번 고민하게 된다. 나의 계절과 나의 업무시간, 나의 휴무, 나의 명절은 나의 기준이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다양한 메일 인삿말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사람은 어떤 계절을 보낼까, 언제까지 일할까, 어떤 하루를 보낼까 한번 더 고민하고 그에 적절한 인삿말을 하는 이 순간이 즐겁다.



ps. 하지만 매번 흔한 인삿말을 보내곤 한다.

pps. 치앙마이에서 인사를 보냅니다. 즐거운 추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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