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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Jul 19. 2023

23% 부족한 김밥

잘 말아줘 잘 눌러줘

"여보, 나 김밥 먹고 싶어."


아내와 나는 김밥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니 조금 웃긴 말 같기도 하다. 한국 사람치고 김밥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맛과 모양으로 어린 시절 신세계를 열어주었던 김밥. 소풍이나 체육대회 때에나 먹던 그 귀한 김밥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가게마다 메뉴마다 맛이 달라 웬만해서는 질리지도 않는다. 나는 샐러드김밥을 제일 좋아한다. 단골 가게에 가면 고추냉이를 부탁해 곁들이는데, 달큰하면서 알싸한 조합이 매력이다. 참치김밥도 자주 찾는다. 어느 가게에 가든 웬만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김밥 계의 클래식이랄까.


아내가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 동네에는 김밥집 따위가 하나도 없다는 것. 한인 마트에 가면 만들어 놓은 김밥을 팔긴 하는데, 기름 범벅에 맛없고 값은 비싸다. 방법은 하나. 내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학교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나 김밥을 싸신 이유를. 준비할 재료도 많지만, 밑 작업은 번거롭고, 시간이 꽤나 걸린다. 치우는 것도 일이다. 나처럼 요령 없는 사람에게는 예쁘게 말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샐러드김밥이나 참치김밥 같은 메뉴는 언감생심, 내게는 기본 김밥만 잘 만들어도 다행이었다.


그래서 처음 만들어 본 김밥은 내가 본 그 어느 김밥보다 형편없었다. 한 줄 두 줄 말아낼수록 조금 나아졌나 싶다가도, 칼로 썰어낸 단면에는 재료들이 하나같이 한쪽으로 쏠려있고, 굵기는 전혀 균일하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옆구리가 터지고 벌어지기도 했다. 들기름을 써서 덜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몇 년 전 온갖 채소와 소시지를 볶아 낸 적이 있는데, 그 간단한 걸 만들며 군데군데 태웠다. 간을 한다고 뿌린 소금은 다른 채소를 모두 피해 브로콜리에만 묻었다.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올리며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는데, 이날의 김밥도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김밥일까? 부족하지만, 아내는 참 맛있게 먹는다. 그래, 적어도 재료를 태우거나 간을 잘못하지는 않았으니까. 온 집안에 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 어떤 요리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들었고,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간 터라 나름의 성취감을 느낀다. 이날 이후 김밥을 딱 한 번 더 만들었다. 모양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지만, 재료 밑 작업이나 김밥 마는 시간은 전혀 줄지 않았다. 과연 반복한다고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래, 이제 우리도 김밥은 체육대회나 소풍 때에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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