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시간에 내가 부리는 최고의 사치는 원두 사러 가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하루에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일은 드물다.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닌, 주식의 영역에 들어온 음료다. 수십 년간 커피를 마시다 보니 입이 나름 까다로워져, 맛집 찾아가듯 맛 좋은 커피집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좋은 향미와 밸런스 갖춘 원두를 사러 가는 길은 이미 마음이 든든하다. 고민 끝에 고른 원두는 한동안 끼니처럼 내려져 지친 몸과 마음을 깨우는 역할을 할 터이다. 카페에서 픽업하는 커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같은 원두여도 전문 바리스타의 손을 거친 커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을 내니까. 20분 정도 달려 단골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오늘은 무얼 마실까, 아내에게는 무얼 사다 줄까' 생각하며 들떠있다. 가끔 대체 원두가 언제 동날까, 하고 기다리는 이유다. 오늘은 구입한 것과 같은 원두를 케멕스로 내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내가 마셔본 중 둘째라면 서러운 아이스 라떼 한 잔을 더했다. 카페에서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