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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Jul 26. 2023

TV는 나의 적

내가 아내를 잘못 물들였다

아내가 한 번씩 밤잠을 설치게 한 데에는 내 영향이 컸다.

세상에는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는 방송이 많은지, TV가 있으면 나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드라마부터 예능, 스포츠까지 다양하게도 시청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 가면 늘 TV가 켜져 있었다.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고, 밥을 먹으며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식사가 끝나면 다른 방송을 봤다. 편성표에 맞춰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채널로 넘겼다.

아내는 TV를 거의 보지 않았다. 영상보다는 활자와 가까워 책을 많이 읽었다. 눈과 귀를 닫고 사는 사람은 아니어서 요즘 어떤 영화나 방송이 인기인지, 어떤 연예인이 뜨는지 대략 알고 있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이따금 내가 유튜브로 재미있는 클립들을 찾아 보여주며 키득거리면, 이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 할 때도 있었다. 한 이불을 덮으며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렇게나 달랐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우리의 신혼집에 TV가 들어선 뒤다. 나보다 더 TV에 빠져사는 친구는 우리에게 TV가 없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도 TV 시청할 시간에 다른 것을 해보리라, 다짐하며 아내와 TV를 구입하지 않는 것에 합의했는데, 늘 새로운 콘텐츠 이야기를 꺼내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우리에게 답답함을 느낀 친구는 아내 생일 선물로 화면이 커다란 TV를 놓아주었다.

오랜만에 TV를 보니 역시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참 많다. 문제는 아내가 한 번 방송을 보면 중간에 끊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12회짜리 드라마를 저녁 먹으며 시작하면, 나는 몇 화를 보다 지쳐 쓰러지지만, 아내는 새벽까지 버티며 완결을 냈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나는 빈지워칭이 가능한 프로그램은 쉽게 클릭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다가오는 내일을 준비해야 할 의무도 있으므로.

스포츠 하이라이트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하고 F1 경기 하이라이트를 틀었다. 아내는 루이스 해밀턴이 멋있다며,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며 지난 시즌 경기 하이라이트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심심풀이로 검색했는데 아내는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잘 생각을 않는다. 허, 이거 참. 이 것은 아내가 헤어날 수 없는 콘텐츠를 보여준 나의 실수일까, 아니면 TV를 선물한 친구의 잘못일까? 가끔 TV가 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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