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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코는 왜 Sep 06. 2019

윤가은 감독의 윤이버스(YOONIVERSE)

아이를 바라보는 빛나는 시선, '윤가은'


많은 사람이 기다리던 <우리집>이 드디어 개봉을 했다. 오랫동안 자신만의 색깔로 영화를 만들어왔던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 전작인 <우리들>이 호평을 받은 만큼 당연히 그것과 비교를 안 할 수 없지만, 이미 <우리들>과의 비교는 여기저기서 많이 보인 터라 나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윤가은 감독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려 한다. 내가 이름 붙이길 바로  '윤가은 윤이버스(YOONIVERSE)'다. 이를 위해 전작인 <우리들> 이외에도 비슷한 결을 가진 단편 <손님>과 <콩나물>을 함께 살펴보며 윤가은 감독이 쌓아 올린 세계관과 <우리집>에서 보이는 변화된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윤가은 감독의 <손님>


먼저, 윤가은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가은 감독의 <손님>, <콩나물>, <우리들>, <우리집> 네 작품은 모두 비슷한 톤을 가진 아역 배우가 등장한다. 심지어 그들은 처한 상황까지도 비슷하다. 모계 중심(여기서 모계 중심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과 교감하고 주인공에게 주로 영향을 주는 인물이 주로 엄마라는 의미다)의 가정, 저마다의 갈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또한 기본 구성처럼 깔려 있다. 마지막으로 네 편 모두 전형적인,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이루고 있다. <콩나물>에서 엄마들은 모두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들>에서 엄마는 분식집을 하면서도 아이 돌보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우리집>에서도 워킹맘이지만 전적인 가사와 육아는 엄마가 부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아빠는 뭐하냐고? <손님>에선 두 집 살림하거나... <우리들>에선 술 마시는 모습만 주로 나오거나... <우리집>에선 허구한 날 부부싸움하는 남편으로... 뭐 어디 하나 조용한 집안은 없다.


윤가은 감독의 <콩나물>


네 편의 영화가 이렇게 공통점이 많음에도 그것들에게서 우리가 차이를 느끼는 이유를 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첫째는 주인공의 나이 때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 생각의 크기, 위기 대처 능력 등이 모두 제각각이기에 그것은 곧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한다. 두 번째는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관여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바로 두 번째 차이점이 <손님>과 <콩나물>의 차이를 만들었고, <콩나물>과 <우리들>의 차이를 만들고 <우리들>과 <우리집>의 차이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네 편의 영화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 듯 사뭇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나 달라진 영화 구조 속에 아이들을 어떻게 배치시키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윤가은의 영화에 두 가지 세계가 있다면 하나는 어른들의 세계 다른 하나는 아이들의 세계다. <우리집> 이전의 작품들에선 두 세계는 공유되는 듯 하지만 엄연히 분리돼 있었고, 특히 아이들의 세계는 그들 사이의 위계와 질서, 그들만의 논리로 구성된 별나라였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세계는 더 빛났고 어른들이 감히 들어올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계처럼 비쳤다. 하지만 불문율처럼 느껴졌던 이 공식은 <우리집>에 와서 깨진 것 같다. <우리집>에서 아이들의 세계는 외부의 세계, 즉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하나는 부부싸움이 잦은 부모님, 사춘기 오빠로부터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한다. 하나의 행동은 대부분 외부로부터 기인하고 유미와 유진을 만난 이후에도 그 생각이 크게 변화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집'이라고 하는 유토피아 같은 공간을 유미와 유진도 바라고 있기 때문이고, 유미와 유진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든 부모님, 허구한 날 집을 보러 오는 매입자들 때문에 자신들의 세계를 위협받기 때문이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윤가은 윤이버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면 단연 독립되고 아름답고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와 시선, 꾸미지 않은 말들과 거기에서 기인하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손님>, <콩나물>, <우리들>, <우리집> 순으로 아이들은 외부의 영향을 자꾸만 받아간다. 윤가은 감독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더 나아가 세상의 커다란 구조 속에 아이들을 놓고 싶은 거라면 그리고 거기서 겪는 많은 일들을 그들이 경험하게 하고 싶은 거라면 나는 적극 말리고 싶다. 어른들의 세계 속에 아이들을 편입시키고, 아이들의 세계를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목소리와 대사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말 것이다. 이 같은 생각들 때문에 <우리집>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우리집'을 부숴버리는 게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우리집'을 그들의 문제가 아닌 그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으로 인해 부수기 때문이다. 사실 부서져야 하는 건 그들의 세계 구축을 방해하는 주변 요소여야 함에도 아이들의 세계가 스스로 무너지는 걸 보는 건 너무나 아쉬웠다. 앞으로는 <우리들>에서 봉숭아 물들인 손톱이 시간의 흐름과 관계 개선의 여지 등 다양한 의미를 가졌던 것처럼 더 세심하고 따뜻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볼 윤가은 감독의 빛나는 시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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