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임당검사, 자궁경부길이에 대한 과도한 확증 편향
25주, 내가 치질이라니...! 극강의 고통 혈전성 치핵
26주, 두근두근, 임당검사 결과 통보. 그리고 자궁경부길이에 대한 맘카페의 흉흉한 소문
지난 25주 5일, 산부인과 정기 검진으로 임신성 당뇨 검사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다. 임신성 당뇨 시약은 이전 검진 때 미리 받았었고, 검진을 위해서 2시간 금식 후 시약 복용, 시약 복용 후 정확히 1시간이 경과했을 때 채혈을 해야 한다고 안내받았다. 나는 검진일에 오전 반차와 태아검진휴가를 사용하여 하루를 쉬고, 12시 이전에 점심 식사를 마무리한 뒤 정확히 오후 2시에 시약을 마셨다.
당시약은 임신부들 사이에서 공포의 물약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이 자자한데, 불쾌한 단맛의 오렌지맛, 레몬맛, 또는 무(無)맛이 느껴지는 물약이다. 내가 받은 당시약은 레몬향이 첨가되어 있다고 적혀있었는데 딱히 상큼한 향 따윈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엄청 진하게 탄 설탕물을 원샷하는 느낌이었다. 당시약을 마시고 속이 울렁거린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행히 나는 마실 때도, 그 이후에도 그렇게 심한 불쾌감은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확실히 처음 마셔보는 괴상한 맛임은 틀림없다.
병원에 막 도착했을 때가 오후 2시 정각이었고, 병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당시약을 마셨다. 평일 오후는 보통 대기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대기가 길었다. 그런데 나는 어차피 오후 3시에 정확히 채혈을 해야 하므로 그때까지 병원에 있어야 해서 오래 대기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4주 만에 다시 뵙는 주치의 선생님은 아기의 머리 직경, 복부 둘레, 허벅지 길이 등을 재어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 써니는 머리 직경, 허벅지 길이는 주수보다 1주 정도 컸는데, '왜 머리가 클까요?'라고 물으니 대부분 한국 아이들은 머리가 큰 편이라고... (다리가 길다는 것에 위로를...) 아기의 몸무게 추정치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우리 써니는 860g 정도로 아주 정상 범위였다. (언제 이렇게 컸니!)
산모의 체중 관리도 잘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나는 임신 전과 비교하여 1~2kg 정도 체중이 증가했고, 이것은 입덧으로 2~3kg 정도가 빠졌다가 회복된 결과이다. 체중이 너무 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주치의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한시름 내려놓았다.
임신 전 BMI가 적정체중이었던 경우, 임신 중 체중 증가는 11~16kg 정도가 적당하다(단태아). 보통 일주일에 500g 미만, 한 달에 2kg 미만으로 증가해야 이상적이다.
아기의 얼굴을 보려고 열심히 들여다보았는데, 아기가 태반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전히 아빠를 닮은 것 같은 코와 입이 잘 보였는데, 양수를 먹고 있는 건지 꼬물꼬물 거리는 입술이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치질을 겪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잠시 환부를 확인하셨는데, 열심히 좌욕을 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육안으로 보기에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역시 좌욕 is the best...) 아기는 모든 것이 정상 소견, 오늘 임신성 당뇨 검사 시에 지난번 염려되었던 간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간 기능 검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결과는 차주 중으로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진료는 마무리되고, 조금 더 기다리니 정확히 오후 3시가 되어 채혈을 했다. 임당검사에서 당시약 복용 이후 정확히 1시간에 채혈을 하지 못하면, 병원의 설명으로는 2분 이상 초과될 시 검사는 무효하다. 따라서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당시약을 마시고 너무 많이 움직인다면 당이 떨어져 검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일부 산모들의 경우 임당검사를 통과하겠다고 바짝 식단 조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임당검사를 통과한들 정확한 결과가 아닐 것인데, 부정확한 검사 결과는 산모와 아기에게 모두 좋지 않다. 그리고 임신성 당뇨는 산모가 먹는 음식에 따라 발생하는 게 아니라 호르몬 때문이므로, 최대한 평상시같이 지내다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임신성 당뇨란?
임신성 당뇨는 '현성 당뇨(임신으로 발생한 당뇨가 아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당뇨)'와는 다르게, 원래 당뇨가 없던 사람이 임신 20주 이후에 당뇨병이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태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임신부의 인슐린 기능이 떨어지면 정상 임신부의 경우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때 인슐린 분비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임신성 당뇨가 발생한다.
출산 후 대부분 정상 혈당으로 돌아오지만, 임신성 당뇨가 있는 경우 산모와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거대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아기가 태어난 이후 소아비만이 생길 확률이 높다. 임신성 당뇨로 진단된 산모는 다음 임신 시 48%에서 임신성 당뇨가 재발, 향후 20년간 현성 당뇨가 나타날 가능성이 50%로 상당히 높다. 출산 후 4~12주 내에 혈당 상태를 재검사하게 되며, 매 3년마다 주기적으로 혈당 검사가 필요하다.
임신성 당뇨로 진단받으면, 1차적으로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 혈당이 조절되는지 보고, 그래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인슐린 또는 혈당강하제를 사용하여 혈당을 조절한다.
임신 전 비만한 경우
직계 가족 중 당뇨병이 있는 경우
이전에 임신성 당뇨가 있었던 경우
이전에 4kg 이상의 아기를 분만한 경우
뚜렷한 이유 없이 사산, 조산, 유산 등의 경험이 있는 경우
주말이 지나고 26주 1일이 되는 월요일,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는데, 임당 검사는 통과를 했고, 걱정했던 간수치는 정상 범위 내로 떨어지긴 했으나 아직 아주 안심할만한 수치는 아니므로 계속 영양제는 철분과 유산균만 복용하기로 했다. 간수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했던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나는 약간 실망을 했으나, 어쨌든 정상범위라는 말에 안심하기로 했다. 영양제를 못 먹는 것도 어차피 아기에 비하면 내 몸이 가진 영양소가 훨씬 많으니 엄마 등골을 열심히 뽑아 먹어서라도 너는 잘 크길 바라는 마음으로 걱정을 내려놓아 본다.
이 시기 즈음이 되면 산모들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수치가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자궁경부길이'이다. 맘카페에서 아주 핫한 주제 중 하나인데, 자궁경부길이는 매번 재야 하며, 2cm 이하인 경우 조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몹시 높으므로 무조건 '눕눕'하라는 의견이 아주 지배적이다. 내가 봤던 글 중 제일 놀랐던 내용은 본인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데, 담당 교수님이 자궁경부길이를 안 재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요청했더니 2cm 대 였고,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면서 조산을 예방하기 위해 약물이나 시술 등의 처치를 요구했으나 담당의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실망했다면서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 산모가 느끼는 조산에 대한 불안함은 이해하겠으나, 과연 얼마나 의학적인 근거를 갖고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일까 의문스럽다. '자궁경부길이가 짧으면 조산한다'는 일부 가능성에 국한된 이야기에 확증 편향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자궁경부가 짧다'라는 것은 경부 길이를 측정하여 2.5cm 또는 2.0cm 미만인 경우를 말한다. 측정하는 주수가 중요한데, 16주 이후, 최대 28주 미만에서 측정하여 2.5cm 또는 2.0cm 미만이어야 자궁경부가 짧다고 정의한다. 자궁경부는 주수가 지날수록 점점 짧아지므로 임신 후기에 자궁경부 길이가 짧은 것은 조산과 연관성이 매우 낮다.
자궁경부길이는 조산을 예측하기는 한다. 다만 초산모 또는 이전 임신에서 조산이 없었던 경우 그 민감도가 8%, 양성 예측도가 16%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조산한 사람의 92%는 자궁경부가 정상이었다는 이야기이며, 자궁경부길이가 짧은 사람의 84%도 조산 없이 아이를 출산한다(이유 없이 짧다). 물론 이전 임신에서 조기진통 또는 조기 양막 파수로 조산한 경험이 있는데, 다음 임신에서 자궁경부 길이가 20주에 2.0cm로 짧아졌다고 하면 이 사람은 조산의 고위험군에 해당하며, 실제로 조산을 할 확률이 4~50% 증가한다.
자궁경부길이는 수치로 알 수 있다시피 조산 과거력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조산에 대해 대단한 마커가 아님에도 산모들이 먼저 주치의에게 재달라고(?)하거나, 수치가 짧은 것만을 가지고 조산을 심각하게 염려하고, 심지어는 자궁경관 무력증 시술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본인의 주치의 말고 다른 의사에게 제2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해 볼만한 시도이지만,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을 믿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본인이 ~카더라 하는 정보에 휘둘려 과도한 불안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자궁경부길이를 재서 짧았다는 이유 하나로 온종일 눕눕을 선택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누워 지낸다고 자궁경부길이가 길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혈전에 대한 위험만 증가한다. 나는 자궁경부길이를 21주에 한 번 쟀고, 3.7cm로 정상 소견, 이후 더 이상 재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 아예 자궁경부길이를 재지 않는 주치의도 있다.
<위 의학적 내용은 아래 출처의 의견을 따랐다.>
(우리동네 산부인과, 우리동산) [LIVE] 임신 후 걱정되는 모든 것 https://youtu.be/2LbyQgvSrtw?t=4590
(삼성서울병원) 자궁경부길이가 짧으면 정말 조산하나요? https://youtu.be/XkcQQ0yl2bQ
임신기간 9개월은 임신부가 행복한 생각만 하면서 보내야 할 시간들이다. 아기와 내 몸이 연결된 소중한 9개월 동안, 내가 스트레스받고 불안해하며 분비되는 안 좋은 물질들을 아이와 공유하지 말고, 최대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나쁜 생각 못된 생각(...)을 최대한 줄이고 아기가 태어나 함께 보낼 행복할 순간을 떠올리며 오늘도 아기에게 말을 걸어본다. 써니야, 건강하게 열 달 무사히 채워서 엄마랑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