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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Jan 08. 2023

[산후조리일기] '순산'은 없다.

모든 분만은 어렵고 아프고 힘들다.

"2022년 12월 23일, 오후 3시 49분 여자아이입니다."


유도분만으로 촉진제를 넣기 시작한 지 7시간여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인생 최고의 순간,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에는 나도 눈앞이 하얘지고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처음 느껴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사실 아기가 몇 시에 태어났다고 고지해주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아기는 수 분, 아니 수 초였을까, 내 품에 잠시 안겨있다가 신생아실로 이동했다. 나는 무언가 내 인생에서 큰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으로 후처치를 받고 있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무통주사로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후처치 시간 동안 그저 멍하니 분만실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가장 주된 감정은 '이제 끝났다'라는 것이었다. 길고 길었던 266일의 기간, 나는 38주 5일에 아기를 낳았으니까 아마도 250일 정도의 기간. 나보다는 뱃속의 아기가 우선이 되었던 시간들. 아기의 건강을 위해 나의 행복을 잠시 미뤘던 시간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엄마'가 되어가는 준비 과정들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건 꼭 해야지! 하던 것들이 막연히 있었다. 예를 들면, 임신을 준비했던 기간 포함 거의 1년을 금주했기에, 시원한 소맥(!) 한잔을 들이켜고 싶다거나, 회, 날것의 해산물, 초밥을 먹고 싶다거나, 엎드려 보고 싶다거나, 8시간 이상 화장실에 가지 않고 통잠을 자보고 싶다거나, 예쁜 원피스를 입고 싶다는 아주 소소한 소망들 말이다. 

tvN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그런 소소한 소망들을 실현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산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산후조리'라는 거대한 산이다. 내가 여기서 말한 '산후조리'는, 산후에 있는 모든 산모의 신체적 변화와 정신적 변화,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산모와 주변사람들의 열심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의학적으로 산후조리, 산후관리는 산욕기 동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종합적인 처치를 의미하는데, 산욕기는 보통 분만 후 6주까지를 말하고 이 기간 동안 임신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신체적인 변화가 임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산욕기가 지나면 자궁도 임신 전의 원래 크기로 돌아가고,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다면 내분비학적으로도 비임신 시의 상태로 돌아가 생리를 다시 하게 되어 다시 임신이 가능해진다. (출처: 차병원 출산정보)


아기가 태어나고 후처치가 완료되면 회복실에 잠시 머무른다. 나는 가족분만실을 이용해서, 같은 공간에서 진통, 분만, 회복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남편과 아기 탄생의 순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병동으로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후처치가 완료된 직후 무통주사를 꺼주셨지만 나는 고통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무통주사의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의 운동성을 상실했다. 병동까지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지만 2인실 문 앞에서부터 베드까지는 내가 걸어서 이동해야 했는데, 전혀 왼쪽 다리로 지지하고 설 수가 없어서 간호사 선생님과 남편이 내 양팔을 붙들어서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다. 왼쪽 다리가 거의 새끼 고라니 같았달까...


그렇게 겨우겨우 베드에 누워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첫 미션을 받았다. 분만 4시간 이내에 소변보기! 

나는 3시 49분에 분만했으므로, 대충 4시간 이후인 8시까지 소변을 본 다음 정상적으로 소변을 보면 간호사실에 말해달라고 했다. 8시까지 소변을 보지 못하면 소변줄을 꼽아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과 함께...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을 왔고, 처치 부위가 많이 부어있으니 아이스팩을 대고 있으라고 했다. 무통 때문에 아직 감각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 아이스팩을 댄 부위가 얼얼한 줄도 모르고 열심히 아이스팩을 대다가 곧 저녁식사를 먹었다. 

그날의 식사는 아니지만, 매번 미역국이라 거기서 거기다.

자연분만의 최대 장점!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수능 날에도 엄마한테 도시락에 미역국을 싸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미역국을 좋아했다. (과거형이다.) 소화도 잘 되고, 어떤 바리에이션으로 만들어도 미역국은 맛있었다. (역시나 과거형) 

아기 낳고 나면 미역국이지! 오늘의 첫 끼에 나는 다 먹을 것 같은 기세로 수저를 들어 올렸지만 이내 얼마 먹지 못하고 남편에게 밥그릇이 넘어갔다. 속도 불편했고, 무엇보다도 숨이 차서 더 못 먹겠다 싶었다. 

임신 막달에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빈맥에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이 좀 있었는데, 분만을 했는데도 그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는데도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숨이 찼다.

다시 누워서 잠을 좀 자보려 했는데, 잠에 쉽게 들지 않았다. 남편이 집에 씻으러 다녀오는 시간 동안 나는 가까운 사람 몇몇에게 출산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2인실이기에, 조용히 에어팟을 꼈다.


남편이 돌아오고 약속의 8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요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아직 왼쪽 다리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분만 후 처음 화장실을 가는 산모들은 반드시 보호자와 동행하라고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쓰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걷는 것 자체가 되지 않았으므로 남편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이동했다. 요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소변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가만히 않아 있는데 소변은커녕 오로만 흘렀다. 

물을 많이 안 마셔서 그런가?

1차 실패 이후 물을 엄청 마시고는, 약속의 8시가 다가왔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전화를 하지 않자 찾아왔고, 더 기다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화장실에 가볼게요, 하고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어린아이가 소변보는 법을 연습(?)할 때처럼, '쉬~~~'하는 소리를 내 입으로(...) 내며 소변을 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소변보기 미션은 성공...


소변을 보고 나니, 그토록 빼고 싶었던 척추 카테터도 빼고, 팔에 꽂혀있던 수액 바늘도 뽑았다. 몸에 달린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다 제거되고 나니 한결 가벼운 기분. 남편과 나는 옆자리 산모를 의식하여 오래 이야기하지 못하고 일찍 잠에 들어야 했다. 남편도 나도, 피곤하고 힘들었을 하루다.

주렁주렁, 수액, 옥시토신(촉진제), 마취제

통잠은 무슨, 나는 10시에 잠들어서 1시에 목이 타서 깨어 물을 마시고, 자세를 바꾸면서 여러 번 깼다. 딱딱한 곳에서는 도통 잠을 잘 못 자는 타입이라, 병원 베드는 나에게 잠 설치기 딱 좋은 잠자리다. 똑바로 자면 허리, 꼬리뼈가 아프고 옆으로 자면 골반이 아프다. 진통이 골반으로 왔었던 터라 그 통증을 닮은 후유증이 골반에 남은 듯 아팠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 4시쯤. 처치 부위가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무통의 효과가 그제야 다 사라졌던 걸까. 회음부 절개 부위가 너무 화끈거리고 불타는 듯이 아파서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혹여 옆 산모가 깰까 남편을 큰 소리로 부르지도 못하고... 결국 발을 멀리 뻗어 발가락으로 남편을 툭툭 쳐 깨우고 진통제를 요청해달라고 했다. 진통제를 엉덩이 주사로 맞았는데, 효과가 즉시 오는 진통제가 어디 있나. 그렇게 잠이 깨버렸다. 


자연분만으로 인한 회음부 절개와 치질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좌욕'이다. 내가 임신 중 혈전성 외치핵에 걸리면서 좌욕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했었는데, 산후조리 중 절대 빼먹지 않고 열심히 하루에 2번씩 꼭 했던 것이 바로 좌욕이다. 병원에서는 좌욕실로 이동해 좌욕을 하는데, 좌욕 예찬자인 나는 병원 좌욕기를 집에 들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다... 좌욕이 끝나면 건조를 잘 시켜주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겨울인지라 바람이 너무 차게 느껴져 꼬리뼈에 바람이 들 것 같은 지경이었다. 엄마가 뼈에 바람 들지 않게 찬 바람 조심하라고 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했었는데... 우리 엄마는 나를 낳고 생긴 산후풍 때문에 아직까지 찬 바람엔 머리가 시려 겨울 외출 시엔 반드시 모자를 쓴다고 했다.


진통제와 좌욕으로 시작한 분만 다음 날 오전, 외래 진료를 위해 진료실로 이동해야 했다. 토요일 오전이 일주일 중 가장 사람이 많은 시간인데, 나는 이 시간을 비집고 가장 첫 타임에 소독을 받으러 내려가야 했다. 나는 정신도 없고 갈아입을 힘도 없어 피가 잔뜩 묻은 산모복을 그대로 입고 진료실 앞으로 갔다. 회음부 통증으로 의자에 앉을 수도 없어 계속 서 있었다. 다행히 금방 내 이름을 불러줘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복부초음파로 자궁 상태를 보고, 처치부위 소독을 했다. 초음파상 소견은 특이사항 없음. 

나에게 특별히 힘든 것이 있냐고 물어, 나는 심장 두근거림과 숨이 차는 증상이 오히려 심해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조금만 서있거나 걸어도 숨이 차고, 심지어는 밥 먹다가도 숨이 차 숨을 고르고 밥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어제는 침대 시트가 너무 피로 젖어 잠시 갈아주시는 동안 서 있었는데, 그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정신이 아득한 듯 쓰러질 것 같아 얼른 침대에 드러눕기도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과 진료를 보고 가라고 했다.


나는 흉부 X선 촬영을 하고, 내과 진료를 기다렸다. 내 앞에 들어간 분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걸까. 의자에 앉을 수가 없어 서있던 나는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력이 너무 빠져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앉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의자를 팔로 지지했다가, 무릎으로 지지했다가, 한쪽 엉덩이로 앉았다가 허리가 아파 또 일어났다가. 

힘들어 죽겠다 싶은데 내 이름을 불렀다. 내과 선생님은 분만 후 숨이 차는 증상이 있을 수 있는 경우는 폐 부종이 가장 흔한데, X선 상으로는 그런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막달검사에서 심전도 검사 상 빈맥이 있었다고 하니 심전도 검사를 추가로 해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심전도 검사도 대기의 연속.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나는 대기실에서 또 한참을 서 있었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너무 힘들어서, 라고 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심전도 검사를 하려고 잠깐 누웠는데, 다행히도 누우니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심전도 검사는 3분 카레보다도 빨리 끝났다. 


다시 내과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이제는 눈물이 너무 줄줄 흘러 남편에게 휴지를 갖다 달라고 했다. 진통의 고통과 비교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통은 1분이면 끝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이렇게 힘든 건 언제까지 힘든 건지 모르니까 더 미치겠어'

그렇게 눈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내과 선생님은 심전도 검사에서도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간단하게 검사해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으로 청진을 해보시고는 이 마저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심전도 검사를 하는 잠깐동안 누워있으니 조금 낫더라는 이야기를 하니,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대개 누우면 그 증상이 심해지는데, 누워서 괜찮아진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탈진'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가 '순산'을 한 줄 알았다. 남들보다 자궁문이 3cm까지 열리는 데 크게 고통스럽지도 않았고,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어 무통주사도 금방 맞을 수 있었다. 다행히 무통도 잘 들었고(중간에 골반으로 진통이 오긴 했지만), 힘주기해서 아기가 태어나는 그 순간까지 무통주사의 효과로 힘은 들었으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지울 수 없는 흉터 같은 걸 남긴다. 나는 임신으로 인해 튼살과,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뱃가죽, 그리고 벌어진 복직근을 얻었고 출산으로 인해 회음부를 절개하고, 심각한 치질을 얻었다. 

그리고 온몸에서 쓸 수 있는 힘이란 힘은 다 끌어다 써서 아기를 낳았다. 나는 힘주기를 하다 다리에 쥐도 났고, 힘주기를 하던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내 얼굴이 너무 빨개져 20초 이상 숨을 참으며 힘주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내가 더 이걸 할 수 있을까 안쓰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내 얼굴은 핏줄이 터져 군데군데 붉었다. 


나는 씩씩하다, 잘 해낼 수 있고 잘 해냈다, 라는 자기 최면으로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탈진인 것 같아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더 주룩주룩 났다. 나는 안 괜찮았던 것이다. 회복이 빠르다는 자연분만이더라도 나는 지금 너무 힘들고 지친다. 

'순산'은 없다. 모든 분만은 어렵고 아프고 힘들다. 


나는 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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