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휴직은 저도 처음입니다만
기자 휴직을 결심했을 때 즈음 나는 이런 일기를 썼다.
대중문화 기자를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기자 생활이 지속되며 윤리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내가 쌓아온 가치관, 윤리관에 대해 부딪히는 경험이 쌓였다. 일이 힘든 적은 있어도 싫어진 건 처음이었고 '번아웃'과는 전혀 다른 결의 힘듦이었다.
교육자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흑과 백이 명확했다. 하지만 점차 기자라는 일은 회색지대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저 세상이 만나는 작품들이 좋아서'라는 말로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됐다.
단지 매년 쓰는 영화의 호평, 혹평의 리뷰에 달리는 악플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는 이젠 숨쉬는 듯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더 이상 내게 큰 타격감을 주지 않았다.
문제는 어느 연차부터 시작됐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기자회견, 인터뷰 현장들이 많았다. 나를 아는 동료라면, 혹은 지인이라면 내가 매 행사마다 질문하는 기자임을 알 것이다.
내게 기자의 정의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해야 하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칭찬받았고 반대로 해야 하는 질문을 하는 날에는 눈치를 봐야 했다.
학폭, 음주운전, 마약 등 잘못이 있는 연예인을 타박하는 질문은 기자밖에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기자회견'은 대중에게 질문 대상의 답변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변변치 못하거나 대중의 상식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답변은 일갈해야 마땅하다. 이해관계가 있든, 영향이 가는 지인이든, 봐주기식은 안 된다.
하지만 가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팬들의 암묵적 협박 혹은 업계 관계자의 읍소에 항시 노출됐다. 대부분의 동료들에겐 응원을 받았으나 '척졌냐', '뭘 그렇게까지 하냐', '친한데 좀 봐줄 수 있지 않냐'던 동료도 소수이나 분명 있었다.
타당한 질문의 맥락이 잘리고 자극적으로 짜깁기된 릴스나 쇼츠 영상을 보는 것도 일상이 됐다. 따라오는 결과는 익명 뒤에 숨은 디지털 불량배들이 쏟아내는 날 선 반응들 뿐이었다. 이름, 직장, 얼굴까지 다 내놓고 질문하는 자리니 당연히 신상이 털리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아마 대중문화 기자라면 한 번쯤은 당했을 일이다. 주변 선배들 중에서는 이미 이런 모든 상황들에 대해 무던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이후 내겐 룰이 생겼다. 한동안 인스타 DM은 열지 않고, 댓글을 읽지 않았다. SNS에 퍼진 영상들이 알고리즘에 걸린다고 해도 바로 무시해버렸다. 법적 대응에 대한 변호사의 자문도 받았으나 내가 바라는 정도의 수확은 얻을 수 없었다.
'대중'문화 기자가 '대중'에게 외면받는 경험은 참으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대중을 위해 무언가를 알리고, 소개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중에게 외면받는다면 내가, 혹은 미래의 많은 사람들이 부서질 것 같아 하는 푸념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내 업과 관련된 모든 이들도 다 사람이다. 똑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더 알려졌다는 이유로 더 (비판이 아닌)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여러모로 내가 바라는 '모두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는 세상'은 아득히 멀어 보였다. 익명으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고, 찌르고, 벼랑 끝으로 떠밀어버리는 세상이 참 막연해 보였다.
세상과 가장 가까워야 하는 업을 가진 내겐 이 세상이 내 업을 싫어할 충분한 사유였다.
그러던 중 취재하다 부상을 당했다. 결국 6주 전치 진단이 나왔으나 2주만 병가를 냈다. 출입처를 메꿀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진단서에 적힌 날만큼 쉬는 것도 무리라 일단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쉬기로 했다.
신기한 건 이때 쉰다고 주변 기자들한테 알렸을 때 "괜찮아?"보다 먼저 나온 말이 "부럽다"였다. 너무 슬픈데 또 이 대화가 웃겨서 "와, 우리 이렇게 사는구나"라며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의사 선생님은 "해도 되지만 본인이 아파서 못 할 거다"라는 무서운 말을 남겼다. 선생님 말이 사실이었다. 아파서 의자도 제대로 못 앉는 상황에 대부분의 일상을 침대에서, 그것도 옆으로 누워서 보내다 보니 무력감도 찾아왔다.
그런데 웬걸. 아집을 부린 빠른 복귀가 전치 8주의 후유증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두 번째 병가를 신청했으나 정말 다행히도 회사에서 빠르게 통과를 시켜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아프다고 하면 쉬게 해주는 회사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씁쓸한 일이긴 하다.)
그래서 이 매거진이 탄생했다. 내 멋대로 규칙 없이 발행할 것이라 연재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글이긴 하지만 내가 2달 동안 겪고 있는 일들을 하나둘씩 브런치 블로그에 기록해 나가고 싶었다.
푸념이나 하소연일 수도 있고, 그저 재밌는 썰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닿길 바라는 진심을 담아 적어나갈 것이다. 그 누군가는 선플을 다는, 악플을 다는, 혹은 그냥 그저 아무 생각없이 이 글을 넘기는 모든 사람들 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