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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켱 Apr 18. 2022

아쉬운 주말 안녕.

남겨보는 주말의 기록.

요즈음 나의 일상을 감정 하나로 꼽아 표현한다면 '아쉬움'일 것이다.

매일 저녁, 연인과 통화를 끊는 일도 아쉽지만, 오늘 내가 보낸 이 하루를 '어제'로 보내주고 나는 또 '내일'로 향해야만 한다는 게 아쉽다. 아쉬워 죽을 것 같다. 날이 좋은 것도 이유겠지만, 일에 있어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요즈음이어서 더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주말이면 애인과 시간을 보낸다. 백일이 갓 되어가는 이 서른 중반의 나이 많은 연인은, 주말이면 꼭 붙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낯선 서로는 서로에게 새로운 생활습관이 되어간다. 어릴 땐 그 시절 애인과 뭔가 거창하고 특별한 걸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대단한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는 편이었다. 기대만큼 특별하지 않던 우리의 평범함에 실망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유독 이 평범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감각의 차이란 상대가 달라져서 오는 차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걸맞은 이유라면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달라져서 오는 차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이제 겨우 사람이 되었단 소리. 그래 그게 더 정확하겠다. 과거의 그때와 달리 아쉬운 게 훨씬 많아진 나는, 상대와 함께 시간을 쌓고 일상을 만들어나가며, 서로를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쁘고 신이 난다. 이 와중에 문제라면 멀티가 안 되는 인간인지라, 어쩐지 나의 주변과 풍경을 충만하게 감각하고 살뜰히 꾸리고 가꾸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공사다망하게 되어, 되려 과거의 내가 뜨겁게 열망하던 '대단하고 거창한 성취'에서 멀어져 가는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그 뜨거움이 찰나의 것일 줄은 나도 몰랐지. 그런데 이 지점에서 그런 감각이 좌절이 아닌 편안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낯설다. 이런 변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나는 또 어떻게 변해가게 되는 걸까.



금요일 밤엔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함께 방방이를 탔다. 우연히 아파트 단지 내 조성되어 있는 방방이에 나이 서른 중후반의 인간들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 찬 남녀가 달밤에 방방이를 타는 모습이라, 이만한 진풍경이 또 없었을 텐데. 방방이를 한껏 신나게 뛰는 상대가 너무 웃겼다. 그렇게 좋아 죽을 일이야. 귀엽고 웃겼다. 알아갈수록 첫인상과 다른 부분들을 느낀다. 순수한 구석을 느낀다. 사실 순수는 자신의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에는 의미가 퇴색된다. 나 순수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진짜 순수한 것이겠는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순수함'을 지향하고, 또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균형감각과 중용의 노력이 요구되는 건가란 생각을 하기에, 그런 점에서 순수한 느낌을 좋아한다. 존경한다. 이 사람에게도 그런 걸 느낀다. 비슷한 지향을 품고 있는 상대로부터 포근함을 느낀다.



토요일엔 처음으로 함께 등산을 했다. 매번 가자 가자 말만 하다가 드디어 함께. 높이가 250m도 안 되는 매우 완만한 산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등산에 나는 본인의 벅찬 숨을 어쩌지 못해 산행 초반 한참을 숨넘어갈 사람처럼 거칠고 요란하게 헥헥거렸다. 고작 이 낮은 산에 내 숨이 이렇게 가빠질 일인가 싶어 나의 노화에 화가 살짝 났다. (성질머리 하곤.) 산길을 함께 오르던 나의 애인은 나의 가쁜 숨을 과장하듯 따라 하며 짓궂은 익살(재롱과 희롱 어디 즈음)을 대방출했고, 나는 그게 또 웃겨서 가쁜 숨으로 힘든 와중에 터지는 웃음에 정말 죽을 뻔했다. 그렇게 한참을 헐떡였던 것 같은데 슬슬 산에 적응되기 시작하더라. 그러곤 어느덧 나의 거친 숨이 안정되어, 주변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오오.. 사선을 넘기면 뭐든 좀 버틸 만 해진다는 말은 역시 맞는 말이었나 보다. 동시에 난 참 뭐든, 요란한 인간이구나 싶어 머쓱해지기도. 이 와중에 나의 감동 포인트. 그런 요란한 인간의 저질 페이스를 탓하는 법 없이 뒤에서든, 앞에서든 이끌어주며 동행해주다니, 그의 묵묵한 배려에 혼자 감동했잖아. 그렇게 무사히 정상에 올랐다. 시원하고 뿌듯한 인증숏을 하나 남겼다. 내려올 땐 훨씬 수월해졌다. 집 갈 생각에 신이 났던 것도 같고. 애인과 처음 하는 등산이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인정해보고 싶었다. 함께 산을 오른다면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줄 수 있다. 혼자 오르면 더 빨리 오를 수도 있겠지만, 함께 오르면 재밌잖아. 함께 나누는 뿌듯함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기껏 등산 후 피자로 열량을 때려 넣는 보람까지. 함께 나누는 나태나 일탈도 그래, 기쁜 일이지. 완벽한 피자였다.



일요일엔 미니스톱에서 파는 소프트콘을 찾아 삼만리행 산책을 떠났다. 모든 미니스톱에서 소프트콘을 파는 줄 알았는데 우리 동네 미니스톱이 레어였음을 느꼈다. 매번 이 집 소프트콘 의외로 잘한다길래 날이 풀린 사월 초 처음으로 영접하였고, 기대도 없었건만 편의점 소프트콘 따위가 뽐내는 그 맛의 고품격에 뿅 갔다. 그 맞을 다시 찾아 집을 나섰으나 그날 동네 미니스톱에선 마침 기계 세척으로 소프트콘을 못 판다는 게 아닌가! 돼지력이 증가했다. 오기가 생겼다. 지도를 켜서 근처 미니스톱을 방문하는 여정을 펼쳤지만 결국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 동네 그 지점 말곤 애초에 다 팔 질 않더라. 사람이 못하게 되면 더 갈구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다음 주 또 도전할 것이다. 먹고 말 것이다. 계절의 찬란함을 만끽하려면 소프트콘이 함께여야만 한다…!



  때는 날씨만으로도 기분이 화사해진다. 나는 이것을 즐긴다. 선선한 바람, 따뜻한 . 코로나 덕에 공기마저 맑다. 아무튼 이런 계절이 찰나라는  내겐 너무 아쉬운 일이다. 예전의 엄마가 그랬던 거처럼 어느새 나도 무척이나 호들갑스럽게 아쉬워하곤 한다. 애인은 이런 나의 호들갑을 재밌어한다. 그가 내게  말을 건네준다. 계절은  돌아올 것이라고. 듣기 좋다. 아쉬움이 의욕이 되는 나는,  사람과  계절  의욕적으로 즐기겠노란 다짐을 해본다.



쓰다 보니 주책스러운 글이지만,

남겨보는 지난 주말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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