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주기는 나에게 편한 행동이다.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어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편해서, 감정, 생각, 물질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관계를 유지해 왔다. 가끔 날카로운 말이나 표현이 나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따뜻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그러한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감정의 폭이 줄어들고, 생각이 좁아지며, 물질적 여유도 부족해졌다. 이미 끝난 관계에 대한 미련마저 생겼다. "왜 이렇게 버거운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이유를 나열하고 추측해 봤지만, 내어주기가 그 원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어주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부족하더라도 결국 나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긁어모아도 내어줄 것이 없음에도 한참 바닥만 긁다 결국 깨져버린 그릇과 같은 상태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버거움의 이유는 바로 채움이 없는 내어줌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철저하게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채움에 집중하려고 한다. 잃어버린 나만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여유롭게 물질을 운용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시선과 생각의 폭을 넓힐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관계보다는 나 자신을 우선하고, 타인보다는 나에게 먼저 친절해지려 한다.
앞으로의 글은 채움의 시간을 겪고 난 후에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깨진 그릇을 버리고 새 그릇을 준비한 후 채워가는 과정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기적일 수도 있고, 불친절할 수도 있지만, 이 시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시는 깨지지 않은 채 편하게 베풀 수 있는 따뜻함을 담는 것이다. 말 그대로 무리 없는 아웃풋을 하기 위한 인풋의 시간이다.
스스로의 다짐이자 약속,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거짓 없이 정확하게 전하고, 받아들이자. 다만 준비한 그릇에는 꼭 담고 싶은 것만 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