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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Apr 15. 2019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이런 결혼은 처음이라

 애정, 사랑 그런 게 지금 당장 필요하십니까? 집보다도?

 이 드라마는 청춘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애정과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여자 주인공 윤지호(정소민)는 고학력자임에도 서른이 되도록 보조 작가이며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강력한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아버지는 속도위반을 한 남동생 내외에게 덜컥 집을 줘버린다. 한 순간에 백수에 홈리스가 된 지호에겐 무엇보다 집이 필요하다.


 남자 주인공 남세희(이민기)는 일명 하우스푸어다. 그는 ‘인생에서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집과 고양이 그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비어있는 방을 세를 주고 하루빨리 집 대출을 갚는 것이 목표다. 두 사람은 마음보다 이해관계가 맞았고 계약을 통한 결혼을 하게 된다. 슬프게도 두 사람의 결혼이 계약의 형식을 가진 것은 경제적,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랑이 없다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게 참 쓸쓸하게도 납득이 가고 두 사람에게 사랑이 생길수록 계약의 가장 큰 장점이던 합리와 이익이 엉뚱하게도 슬퍼진다.



 이 엉뚱한 드라마의 가장 큰 흥미는 극 중의 캐릭터가 모두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악역이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의 대부분의 고통은 남이 아닌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 많다. 싫고 못되게 구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그들은 우리 삶을 스쳐 지나간다. 악역이 없는 드라마의 인물들은 좌절 앞에서 남 탓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온전히 슬퍼한다. 회마다 들려오는 내레이션은 주인공의 마음이기도 하고 다른 인물들의 하루이기도 하며 시청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든 캐릭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들 평범하다. 그렇지만 그들을 알아갈수록 참 그들 다운 선택, 그들 다운 대사를 뱉어냄으로써 시청자가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겁게 만든다.



 특히 여자 캐릭터에 생동감이 있다. 지호와 그의 친구인 양호랑(김가은)과 우수지(이솜)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지만 친구로 모였을 때의 케미까지 잘 조합된 삼총사다. 호랑은 밝고 애교도 많으며 감정이 풍부한 인물이다. 반면 우수지는 이성적이고 웃는 호랑의 얼굴에 돌직구를 던지는 화끈한 성격의 인물이다. 그리고 지호는 감성은 예민해도 표현이 서툴다. 덕분에 호랑과 수지의 사이를 이어주고 지호를 아는 두 사람은 지호와 대화를 할 때 늘 지호보다 먼저 말을 꺼내 지호의 마음을 들으려 한다.


 남성 캐릭터들은 공통적으로 ‘여자를 모른다’는 특징으로 등장한다. 조금 더 눈에 띄는 건 세희 캐릭터이다. 그는 자기중심적이며 계산적이지만 독특한 점은 계산에 따른 칭찬에 박하지 않다. ‘잘 교육받은 소시오패스가 일반인보다 예의 바르다’라는 말처럼 (물론 남세희가 소시오패스는 아니다.) 타인에게 크게 감정적 공감을 하진 않아도 객관적인 칭찬엔 후한 모습에 신기한 호감이 가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마상구(박병은)와 심원석(김민석)은 연애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지는 ‘공대생’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캐릭터이다. 극 중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상황에서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결국 자신과 다른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없는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로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을 드라마에서 보여준다.



 또한 이 드라마의 중요한 키워드인 ‘결혼’을 이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극 중에서 세희가 디자인하는 어플의 이름은 ‘결혼 말고 연애’이다. 세희의 입을 빌려 말한 것처럼 우리 세대들은 더 이상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며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대들과 살아가야 한다. 드라마는 이러한 시대에 결혼관에 대해 제법 다양한 생각을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계약 결혼이 어쩌면 이런 고민을 가진 세대들의 고민을 반영한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연애도 못해 본 지호는 결혼에 대해 막연히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돈도 시간도 없이 로맨스와 거리가 먼 지호에게 결혼은 당연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이야기 일 뿐이기 때문이다. 원석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생각하는 결혼은 막대한 책임감이 동반되기에 선뜻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호랑과 상구는 비교적 일반적인 결혼관을 가진 인물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아무리 다양한 가치관이 생겼다고 해도 일반적이라는 것은 존재하니까. 호랑은 결혼을 한다는 것은 ‘평범’이란 ‘까만 코트’를 입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대단한 것을 이루고 살지는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처럼 평범함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받고 사는 것이다.


 세희와 수지의 경우 자신이 비혼 주의자라고 말한다. 비혼이란 ‘원래 해야 하는 것이지만 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가 포함된 미혼보다 더 주체적인 의미의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세희와 수지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의 공간이 있다. 그곳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숨겨놓은 상처들이 사는 공간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공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거나 그 공간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의 닫힌 문을 보는 지호와 상구는 그들의 문이 야속하다가도 닫힌 문 뒤에 있을 그 사람을 안쓰러워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내용이 결혼에 대하는 다양한 시각이 아닌 그런 시각이 모여 결국 우리가 아는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흐름이 당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집이라는 공간을 나누고 결혼도 연애도 계약서에 적힌 만큼, 자신이 예상한 선을 만들어 각자의 공간을 나누고 그 안에서만 모든 일이 벌어질 때의 평안을 말하며 드라마는 시작한다.


 그러나 이 합리는 사랑이 섞여들며 균열이 생긴다. 드라마에서 인용된 시에서 말하듯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느새 숨겨진 공간은 문이 열릴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문이 열려도 괜찮다고 문이 열리는 것도 문은 열어 본 것도 처음이니까. 우리는 결국 처음 같은 매일을 살고 처음엔 좀 서툴러도 괜찮으니까라고 말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공간을 열어주는, 그렇게 서로의 공간을 더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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