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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18. 2022

크루즈 카지노 딜러의 세컨잡, 빙고 버니

카니발 그룹 빙고 세션에 대해


빙고 버니?


카지노에서 근무한다면서 뜬금없이 빙고 버니가 웬 말인가 싶을 테다. 그나저나 빙고...? 비, 아이, 엔, 쥐, 오, ... B I N G O!!! 우리가 아는 그 빙고 게임인 건가?


맞다, 빙고 버니(Bingo Bunny)는 카지노 부서 구성원 중 빙고 세션을 담당하는 크루 멤버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 빙고 버니의 정식 명칭은 빙고 코디네이터(Bingo coordinator)이지만, 코디네이터라는 말이 길어서 그런지 대부분은 빙고 버니로 부른다.



카니발 그룹(Carnival Corporation&Plc)은 카지노 부서 빙고 세션을 주관하고 있다. 선대별로 주관부서는 차이가 있다. 빙고 세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3명의 스탭이 필요한데, 이때 크루즈 스탭 부서에서 빙고 호스트 1명 그리고 카지노 부서에서 빙고 버니 2명이 요구된다. 라운지가 붐빌 시 카지노 매니저와 카지노 호스트가 도움을 주긴 하지만 보통은 3인 1조가 한 팀이 되어 세션을 이끌어 나간다.


port day*에는 빙고 세션이 없거나 하나이지만 sea day*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3시로 세션이 두 개라 9시에 출근을 하는 스케줄이다. 빙고 버니들은 카지노 오피스 안쪽에 보관된 트롤리에 물품들을 챙겨서 11시에 있을 빙고 세션을 준비하기 위해 라운지로 이동한다.

*sea day: 크루즈가 기항 없이 하루 종일 바다를 항해하는 날
*port day: 크루즈 선박이 기항지에 멈춰서는 날

*원래 스크래치 카드는 카지노 케이지(=Casino cage)에서 판매하나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빙고 세션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라운지 입구에 도착하면 최대한 빨리 탁자를 세워 그 위로 커버를 덮고 가져온 물품들을 하나씩 세팅한다. 빙고 종이 티켓은 크기 및 가격대별로 세팅, 빙고 전자 기기는 충전이 잘 되었는지 확인, 빙고 배너 및 판넬 설치, 결제 기기들은 이상이 없는지 제일 먼저 살펴본 후 나머지 것들이 정리되면 비로소 첫 승객을 맞이하게 된다.


보통 sea day에는 하루 두 번, port day에는 하루 한 번 빙고 세션을 진행하기 때문에 빙고 버니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라운지에서 보내게 된다. 빙고 세션이 종료되었으나 카지노가 여전히 오픈 중이라면 빙고 버니들은 서둘러 정리하고 카지노 업장으로 복귀해 카지노 딜러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그래서 본업은 카지노 딜러이지만 빙고 버니라는 타이틀로 세컨잡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본인의 컨트랙이 끝나는 마지막 크루즈(ex. 집에 가기 전 마지막 주)에는 빙고 코디네이터로 일을 할 수 없다. 시스템에 내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 마지막주에 실수를 하거나 일 처리 중 오류가 생기면 내가 더 이상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 혹여나 그것을 발견했을 땐 난 이미 휴가 모드인 상태이니까.






바야흐로 스타 프린세스호에서의 승선 한 달 차, 카지노 매니지먼트팀은 그 어느 때보다 급하게 빙고 코디네이터를 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보아하니 현재 그 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친구의 계약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인 하선 날짜가 다가오고 있어 그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전에 대체자를 찾아야만 했다.


좀처럼 지원자가 나오지 않자 팀 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매니저는 구성원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빙고 코디네이트 업무를 맡을 의향이 있는지 다시금 의사를 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한동안 번번이 거절의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카지노 매니저라 할지언정 권유는 가능하나 강요를 할 수 없었던 터라 쉽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어김없이 나에게도 질문 공세가 퍼부어졌는데, 나는 단호하게 의향이 없다고 의사를 표현했다. 여전히 카지노 딜러로서 플레이어들과 소통하며 근무하는 게 즐거웠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 컨트랙이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비해 한층 넓어진 카지노 업장이 마음에 들었던 건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업무보다는 내 본업인 카지노 딜러의 역량을 향상하고 싶었던 마음이 훨씬 컸다. 특히 이번 컨트랙 목표였던 카지노 딜러가 최종단계에 배우게 되는 카지노 게임인 '다이스(Dice) 트레이닝'이 조만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운이 좋아 트레이닝에 참여하게 되더라도 계산과 암산 능력이 능숙해지려면 실전 테이블에서 꾸준히 딜링을 해야만 하는데 빙고 코디네이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 기회가 감소되니 내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기간 내 대체자를 찾지 못했는지 매니저는 또 한 번 내게 의사를 물어왔다. 미안하다고 웃으며 거절을 하려던 순간, 옆에 있던 카지노 호스트와 슬롯 어텐던트까지 합세했다.




좋은 조건일 거야
네가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나는 꼭 네가 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는 매니저를 보며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급한 걸까'하고 걱정되었기보단, 또 한 번 내게 물어온다는 건 동료들이 전부 거절했다는 소리이기에 부쩍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별다른 방도가 없는 그들이 한 사람을 꼬시기 위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쏘아붙이는 게 약간은 애처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입술을 뗐다.

나: 난 별로 생각 없으니 다른 친구들에게 한 번 더 물어보는 게 어때? 사실 아무에게나 다 물어보는 거잖아. 분명히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을 거야

카지노 매니저: 유정, 이래 봐도 아무에게나 물어보는 거 아니야


그녀는 빙고 코디네이터이 장점을 말해주겠노라며 블랙잭 테이블에 스탠바이하고 있는 나를 잠시 불러냈다.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긴 했던 터라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가 하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1. ALWAYS OPENING SHIFT: 파트너인 빙고 버니와 매일 가장 먼저 마치게 될 것.

카지노 부서는 매 크루즈마다 스케줄이 변경되어 나온다. 스케줄에는 일별/개개인별로 숫자(숫자는 퇴근하는 순서)가 함께 기입되어 있는데 오프닝-미들-클로징 시프트의 순서에 따라 그 숫자가 나뉜다. 15명의 카지노 딜러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그날 본인 이름 옆 숫자가 1이면 가장 첫 번째로 퇴근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이 첫 번째 혜택은 매일매일 1~2번째로 퇴근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게 케바케라 근무를 더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빨리 마치면 좋은 게 아니냐는 그들의 의견이다.


2. NO SP, NO SC: 카지노 딜러로서 반드시 해야 할 근무에 배제됨.

카지노 업장이 문을 닫으면 구성원 일부는 테이블의 박스를 교체하고 개봉하고 카운팅을 한다. 참고로 매일 해야 하며 이 박스에는 승객들이 테이블에서 바꾼 현금과, 팁 등이 담겨있다. 한 크루즈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슬롯머신 내부에 장착되어 있는 현금 박스 또한 교체하고 개봉한다. 이 두 가지는 카지노 딜러라면 꼭 해야 하는 작업이다. 퇴근 순서의 마지막 순번을 받게 되는 딜러가 슈퍼 바이저와 진행하는데, 여기까지 마쳐야만 그날의 업무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혜택은 그 모든 것을 생략해 주겠다는 말. 오프닝 시프트로 근무를 하니 뒤늦게 온 클로징 멤버들과 비슷하게 퇴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소리겠다.


3. $5 PER SESSION: 빙고 한 세션 당 $5씩 더 받게 되는 것.

$5라면 5천 원? 이렇게 보면 큰돈이 아니지만 이게 매일 쌓인다고 보면 상당히 큰 액수이다. 매니저는 부수입을 만들고 싶지 않냐고 물으며 오래전 본인도 빙고 버니를 자주 했었다고 말했다. 거기다 할당량 이상의 판매를 하면 그만큼 빙고 버니 둘이서 그 금액의 반을 나눠 지불받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나는 결국 넘어갔다.


당시 내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경험 vs 현재의 행복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는 새로운 경험을 택했다. 하겠다는 나의 확답을 받은 그들은 드디어 한시름 놓는 듯해 보였다. 그 온화해진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나 잘한 걸까..'의 마음에서 '그래 한 번 해보자!'로 움직였다.




빙고 세션이 붐비는 날에는 이렇게 승객들이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한다.
승객들은 각자 원하는 위치에 앉아 빙고 게임을 진행한다.

알래스카 크루즈, 북유럽 크루즈, 하와이 크루즈, 지중해 크루즈, 아시아 크루즈, 남미 크루즈 등 이렇게 크루즈 노선에 따라 선사에서 진행하는 액티비티는 천차만별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선사에서 제공하는 공연이나 행사 및 이벤트 등은 제외다.


이런 타 액티비티와는 다르게 빙고는 크루즈 노선의 영향을 받는다. 스타 프린세스호에서 알래스카 크루즈와 하와이 크루즈를 경험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1년 365일 붐비는 캐리비안 크루즈와는 달리 대략 일주일 일정의 알래스카 크루즈는 주로 sea day때 빙고가 진행되어 라운지에 활기가 띤다. 하지만 port day때는 승객들이 기항지 관광으로 체력 방전이 되거나, 저녁 식사, 선내 다른 유익한 프로그램이나 쇼 관람 등의 여러 이유들로 빙고를 잘 찾지 않는다. 반대로, 열흘이 훌쩍 넘는 하와이 크루즈는 sea day가 총 8~9번인지라 빙고의 인기는 바닥으로 뚝. 빙고 마니아가 아닌 이상에야 매일매일 시간을 내고 돈을 투자해서 빙고를 하러 오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세 번째 빙고버니 레라또

사실 빙고 버니의 업무가 적응될 때쯤에 나는 굉장한 재미와 만족감을 느꼈다.


한가할 때는 주로 앉아서 티켓을 판매하며 승객을 응대했지만 빙고가 시작되면 라운지 내에서 마이크를 잡고 돌아다녔다. 빙고 호스트와 호흡을 맞추어가며 승객들이 빙고에 잘 참여할 수 있게 반응을 살폈다. 카지노 딜러로 테이블에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좀 더 액티브하게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도 쏙쏙 빠지게 되었다. 정말 바쁘면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였으니 다이어트엔 제격이었다. 더욱이 나는 뼛속까지 아침형 인간이라 일어나면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아침을 꼭 챙겨 먹은 후 출근을 했는데, 그 습관이 카지노 딜러로 새벽까지 근무하며 밤을 지새울 때보다 내 몸을 더욱더 건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카지노가 한창 바쁠 때 우리는 카지노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일을 적게 하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았는데, 그러면서도 팁은 전부 1/n로 나누니 고마운 마음에 우리도 빙고 버니로 근무하며 사사로이 받게 되는 모든 팁을 공유하였다. 추가로, 빙고에서 만난 승객이 카지노 업장에 방문해 나와 함께 게임하고 싶다고 말 해줄 때 굉장히 뿌듯했었다.



하지만 즐거운 날이 있으면 그 반대로 우울한 날도 있는 법.


좋은 조건이었지만 실제로는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매일 철로 된 무거운 탁자, 트롤리, 판넬 등을 옮기며 힘을 쓰느라 온몸이 멍들고 다치기 일쑤였다.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한 하은 물론 승객들과 폭넓은 대화를 하며 의사소통의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았고, 의도와 다르게 말실수를 해서 승객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적도 있었고, 의견 차이로 다른 빙고 버니와 다툼을 벌인 적도 여러 번이었다.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의 모든 순간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고 버니로 근무하는 동안 한 뼘 더 성장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본업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속상했던 초반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카지노 딜러로만 근무했다면 미처 누리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되어 그저 감사했던 나날들. 기대 이상으로 다채로운 추억들이 생겨 신기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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