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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15. 2022

이게 다 무료라고? 양질의 공연 감상하기

크루즈 승무원이 선상에서 누리는 혜택

크루즈 여행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분들은 '대체 크루즈에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야?'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자칫 잘못하다간 크루즈에서 누릴 수 있는 레포츠 및 쇼핑 시설, 다양한 프로그램 및 이벤트, 다채로운 공연,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식 등을 모두 소화하지 못한 채 하선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줄을 놓고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


 

그중 뭐니 뭐니 해도 크루즈 선내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승객들의 이목을 단번에 끄는 건 다름 아닌 쇼(show)가 아닐까. 크루즈에는 암벽등반, 아이스 스케이팅, 수영장, 범퍼카, 워터 슬라이드, 짐(gym), 가라오케, 스파, 빙고, 시네마, 카지노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다수의 인원이 한 공간에서 한 곳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즐기는 건 바로 이곳 극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게스트 엔터테인먼트(Guest Entertainment) 부서의 크루들은 수십 명의 관중들 앞에서 떨지 않을 담력과 대중성,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는 실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크루즈 선내 극장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뮤지션, 피아니스트 및 바이올리니스트와 같은 각종 악기 연주자, 코미디언 등이 수준 높은 양질의 공연을 선보인다. 무대를 채우는 게스트 엔터테인먼트 부서의 크루 멤버들은 한 명의 구성원일 수도, 많게는 수십 명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일반 크루즈 승무원들처럼 6~7개월을 배에서 생활하는 게 아닌 계약에 따라 항차(voyage)별로 선사와 선박을 옮겨 다니며 공연을 선보이게 된다. 






선내 공용어는 영어이기에 99.9%의 공연이 영어로 진행되지만 언제나 1%의 예외는 있는 법.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대게 크루즈 선박이 항해하는 노선 및 시즌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와 아시아 시즌을 했던 당시의 경험으로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중국인 승객들을 배려해 엔터테이너들이 중국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기도, 공연을 총괄하는 프로덕션 팀이 스크린 양 옆에 중국어 가사를 띄어 놓기도 했다. 이때 사회자는 공연 전후로, 혹은 중간중간에 영어가 아닌 언어로 진행했다. 해당 선박에 탑승한 높은 승객 비율을 구성하는 나라의 언어를 영어와 섞어가며 소통하는 것을 보고 이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언젠가 우리나라를 모항으로 하는 국적 크루즈 선사가 생기면 이런 모습을 기대해봐도 좋을까?'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에서 승객 없이 승무원들만 크루징 한 날 감상했던 판타스틱한 공연


Only for crew member


엔터테인먼트 크루 멤버들은 때때로 승객들에게 공연을 선보이기 전 이렇게 승무원들에게 미리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승객들처럼 객석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여유롭게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승객 없이 승무원들만 크루징 하는 특별한 날에 한에서만 가능할 테다.






바이올리니스트인 Katei는 호주 출신으로 중국어와 대만어, 영어, 일본어가 모두 가능한 친구이다.


Katei는 전 세계 대표 크루즈 선대인 카니발 코퍼레이션, 로열 캐리비안 그룹 소속 등의 크루즈 선사를 오가며 공연을 한다. 중국어와 일본어가 능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크루 멤버 중 하나이다. 바이올린을 켜는 실력은 두 말하면 잔소리,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에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까지 갖고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그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게 된다. 심지어는 공연 중 3개 국어를 사용한 멘트를 한 자리에서 뱉어버리고 공연 분위기를 매끄럽게 이끄니 승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랴.




아크로바틱 체조를 하는 캐나다 출신인 Daniel과 Kimberly 역시도 Katei처럼 여러 선사들을 오가며 공연을 하는 친구들이다.


이 둘은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해 내가 못 알아들을 정도며 Katei의 소개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근무할 당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내가 한국인인 줄 몰랐던 댄과 킴은 대한민국 출신이라고 하니 입을 떠억, 고향은 경북 포항이라고 하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보니 포스코의 초청으로 포항에 공연을 하러 온 경험이 있다고. 서울, 부산은 알아도 외국인이 포항은 알기 힘든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 친구들의 말에 덩달아 내가 놀랐던 순간.


댄과 킴은 정말 따뜻한 친구들이다.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매사에 열정이 넘치며 돌의 케미 또한 매우 뛰어나다.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놀라웠던 건 서로에게 신뢰가 바탕이 되어있다는 것. 매 공연을 진행할 때마다 서로의 눈빛을 읽고, 호흡을 함께하며 한 동작 한 동작을 완성해내는 게 참 멋있었다. 위험한 동작이 굉장히 많아 지켜보면서 아슬아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한 번의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는 모습을 보며 감히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가늠조차 안 되었던. 대단한 친구들이 아닐 수가 없다.






크루즈 선내의 극장은 대부분 선미(배의 앞머리) 쪽에 위치해있다. 내가 근무하는 카지노 업장은 선내 중앙에 위치해있는데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극장을 찾았다. 특히 저녁 듀티 중 15분의 브레이크 타임을 갖게 될 때 공연 시간이 겹쳐있으면 내 발걸음은 여지없이 극장으로 향했던 것 같다. 카지노 부서는 근무 시 핸드폰을 소지할 수 없어 사진과 영상으로 모든 퍼포먼스를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형언할 수 없는 판타스틱한 공연들을 이 두 눈으로 마음껏 즐기고 감상했다.


이들이 선보이는 공연들을 감상할 때면 '내가 브로드웨이에 가지 않는 이상 이런 양질의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크루즈 승무원으로 근무하지 않았다면 좀처럼 누리지 못했을 신박한 경험. 그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언제나 다채로운 공연을 선사해주는 게스트 엔터테인먼트 부서 크루 멤버들, 그들이 있기에 승객들이 더욱더 즐겁게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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