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바운드와 나 Part 2
이 글은 공연 기획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 사운드바운드에 대한 2016년, 5월의 기억입니다.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을 준비하며_두 번째 이야기
중학교 때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두 번 탔어야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환승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은 시기였기에 버스표를 아끼기 위해서 부평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부평역에서 부터 남은 거리는 걸어 다녔다.
학교 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다 보면, 철길을 기준으로 회색 높은 담장이 길게 이어진 일정 구간이 있었고, 길 양쪽으로 딱딱한 표정에 군인 아저씨들이 보초를 서 있었다.
당시 기억에 회색 높은 담장의 시작과 끝, 그 구간은 부평 시내 거리와는 동떨어진 공간으로 느꼈던 기억이 난다. 마치 그 부분만 공중에 떠있는 섬 같다고나 할까.
확실히 그 시절, 나에게 회색 담장으로 가로막힌 그곳의 공기와 냄새는 달랐고, 괜히 위축되는 그런 곳이었다.
장소 섭외 차 부평을 다녀온 그 날, 난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학창 시절과 20대 초중반 들락날락 거리며 많은 시간을 보낸 부평이었지만, 난 그 부평의 이야기를 너무나 몰랐었다. 그리고 그 부평의 이야기를 위해 음지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고군분투에 괜한 부끄러움만 가득했다.
부평이란 이름을 걸고 준비하는 음악축제이기에 내가 알지 못한 부평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어디서 그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대표님에게 책 몇 권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기며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니, 우편 주소지로만 알았던 그 부평은 많은 이들의 꿈과 애환이 녹아 있었고 동네는 그렇게 그들의 삶을 짊어지고 긴 시간을 존재하였다.
일제 강점기 태평양 전쟁을 위한 병참기지인 조병창이 부평에 들어섰고 이내 부평은 군수산업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해방 후 같은 자리에 미군부대(ASCOM)가 들어서며 미군부대 중심으로 생계를 꾸리기 위한 이주민들이 몰려들었고, 새로 만들어진 마을 ‘신촌’ 이 형성되었다.
외국 부대가 주둔하면, 그 주변은 작은 문화의 소용돌이가 생기는데 부평 신촌 지역은 미국의 최신 음악이 가장 빠르게 유입되던 곳이었다. 당시 미국의 최신 음악을 받아들인 젊은 연주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이 연주하던 음악들은 한국 대중음악이 뿌리내리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어줬다. 그 시절 부평 신촌 지역에서 연주되던 음악의 영향력에 대해 당시 신문 기사로 보도될 정도로 부평 신촌 지역은 대중음악의 산실이었다.
책을 읽어 가며, 느낀 건 소재의 흥미로움이었다. 부평 신촌 지역이 이토록 달콤하고 맵고 씁쓸하고 쓴 맛깔스러움이 버무려진 곳이었다니. 공간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음악 축제가 슬로건인 사운드 바운드에 부평 신촌 지역이야 말로 적격인 공간이었다.
부평,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