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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Apr 05. 2021

반짝이던 우리에게

몇 달 전 엄마가 이사하시게 되면서 필요 없는 물건은 죄다 정리하신다고 하셨다. 예전 집엔 내 책이 3박스 정도 있었지만, 지금 사는 집에 수납할 곳이 없으니 함께 버려달라고 했다. 그 후 이사한 집에 가니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 이외는 거의 다 버린 듯했다. 버려진 물건 중에는 내가 좋아하던 가수의 CD와 초중고 졸업앨범도 있음을 알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버려진 물건에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독립할 때 정말 필요한 물건만 챙겼다. 옷, 이불, 몇 권의 책. 가져가지 못한 물건엔 먼지가 나날이 쌓여갔지만, 새로운 공간에는 더는 필요치 않은 아이들이었다. 작은 손거울, 동전 지갑, 싸구려 목걸이, 고장 난 헤어핀. 이젠 나에게 설렘을 주지 않는 물건들. 버려야 하는 것들인데 어쩌다 가끔 마주하는 것들에겐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곁만 돌다 집으로 돌아왔다. 한때는 내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물건들이었지만 주인과 헤어진 후에는 금세 색이 바랬다. 결국 인사도 못 한 채 헤어지고 만 것이다.



몇 가지 남은 내 물건을 뒤적거리던 중에 4권의 앨범을 발견했다. 내가 앨범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의아해하며 앨범을 펼쳤다. 한 권은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앨범이었다. 나머지엔 20살부터 26살까지 6년 동안의 사진이 3권의 앨범에 꽂혀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20살 이후로 만날 때마다 찍었던 필름 카메라, 대학교 2학년 난생처음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고 매일 같이 찍었던 사진들. 그 사진들을 부지런히 인화하여 앨범마다 꽂아두었던 것이다.



앨범을 넘기다 보니 사진 속에서 함께 웃고 떠들었던 사람 중에서 이젠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이때엔 이 사람과 친했구나. 함께 여행도 했구나.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할 때마다 낯선 기분이었다. 사진 속 얼굴마다 웃음이 만개해있었다. 사진 속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거나, 손을 잡고 몸을 맞대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린 서로에게 꽤 의미 있는 존재였을 테다. 한참 후 우리는 싸우고 헤어지거나, 서서히 잊히는지도 모르고.



보관하고 있기엔 머쓱해진 사진들을 정리했다. 얼큰하게 취해 요란하게 웃고 있는 사진, 하나씩 간직하자며 나눠 가졌던 서로의 독사진, 친한 사이라면 꼭 찍어야 한다던 이미지 사진까지. 정말 간직하고 싶은 것들로만 심사숙고하여 사진을 골랐다. 잊힌 인연이라고 해서 그들의 사진을 모두 버리지 않았다. 나와 반짝이던 시절을 함께한 그들의 모습엔 내 모습도 겹쳐져 있었다. 포근한 봄 소풍을 기대하고 갔던 쌀쌀한 날에 사진이라도 남기자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던 우리, 의도하지 않게 비슷한 옷을 입고 여행지를 다녔던 우리, 20대 시절 크리스마스마다 서로의 남자 친구가 되어준 우리. 사진을 정리하며 그때를 보고 있으니 인사 못한 이에게 인사를 전하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들로 인해 더 많이 웃었다.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면 우린 그토록 즐겁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내일을 모르기에 오늘을 웃을 수 있었다. 



앨범 정리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 속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이들과의 인연 역시 유통기한을 알지 못한다. 어쩜 끝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서 지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만나는 동안 서로에게 더 다정한 말을 나눌 수 있기를. 함께하는 동안 많이 웃으며 반짝이는 오늘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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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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