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소울>에 대한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지금 눈앞에 작은 회전목마가 빙그르르 돌아가고 있다. 최근 사들인 소품이다. 나에게 쇼핑은 언제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필요한 옷, 신발, 먹을거리, 청소용품, 책 등. 올해 코로나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은 잠자는 곳 이상의 공간을 필요로 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기도 하며 일상의 다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그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몇 가지의 소품을 집에 들였다. 선반 위에 걸쳐둘 레이스 천,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벽에 걸어두는 매듭 공예품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눈이 닿는 공간에 새로운 물건이 필요해 이번엔 회전목마 소품을 샀다.
트레이에 봉을 세우고 동그란 날개 구멍에 목마 고리를 걸어 봉 끝에 날개를 걸면 설치 끝. 바닥 부분에 불을 붙인 초를 올려두면 초가 연소하면서 공기의 흐름으로 목마가 돌아간다. 설명은 거창하게 했지만 높이 20cm 정도의 작은 물건이다. 그러나 이 물건이 책상에 자리 잡고 나선 책상에 앉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초를 켜고 시간이 지나면 회전목마가 돌아간다. 불 꺼진 방 스탠드 조명과 촛불에 반짝반짝 빛나는 회전목마, 벽으로는 회전목마의 반사된 그림자가 큰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벽은 회전목마로 인해 하나의 스크린이 된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행복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영화 <소울>을 봤다. 영화는 지구에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지내는 세상이 펼쳐진다. 영혼들은 각자의 멘토와 함께하며 자신의 관심사, 즉 그곳에서 말하는 ‘불꽃’을 찾게 되면 지구 통행증이 발급된다. 어떤 영혼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미술, 과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불꽃과 만나게 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만의 인생 목표가 뚜렷한 영혼이다. 주인공인 영혼22는 불꽃을 만난 적이 없다. 어떤 것에도 무관심하다. 지구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죄다 시시하니까. 우연히 그곳에 불시착한 조와 만나 지구에 가게 되면서 자신이 알던 지구와는 다른 지구를 만나게 된다.
영혼이 뒤바뀐 영혼22는 조의 몸에 들어가 육체를 가지고 지구를 경험하게 된다. 따사로운 햇살도 맞아보고, 거리 악사의 노래도 듣고, 맛있는 피자도 맛보게 된다. 하찮게만 느끼던 지구인의 삶이 생각과는 달리 즐거운 곳임을 알게 된다. 영혼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어 조는 오래전부터 꿈꾸던 뮤지션이 된다. 꿈꾸던 뮤지션이 되었지만 어떤지 공허한 조. 그 순간 영혼22가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했던 행동들을 상기하게 된다. 떨어지던 낙엽에 감탄하고, 지하철에 있는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길을 가다 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던 모습. 조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목표를 위해 거침없이 질주해오던 자신의 인생. 주변을 돌아본 적 없었던 삶. 조는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영화는 결국 사소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혼은 자신의 불꽃을 가지고 그 불꽃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삶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건과 순간에 집중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인생임을 알려준다. 코로 들어오는 커피의 향기,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 타인의 친절과 그들의 미소, 계절이 바뀌는 순간 같은 것들. 그것은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반짝이는 회전목마를 다시 본다.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조용한 기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나에게서 한 발자국 벗어나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집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