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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mit Oct 22. 2020

#20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직히 말하자면 일 그 자체로는 불만이 없다.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직장동료들은 나의 엉터리 방터리 독일어에 적응해줬고 나 또한 열심히 독일어를 익히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찾게 된 시점이라 초반에 비해 모든 것들이 수월하다는 점은 아직도 나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이다. 지금 이직을 한다면 또다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니까. 두려움도 생긴다.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단축 근무가 연장이 되었다. 내년 초까지 주당 32시간만 일하면 된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풀타임 + 이직 준비는 확실히 버거운 일일 것이다.


코로나 기간이라 어쨌거나 어수선한데 눈 딱 감고 버티기에 들어갈까 하는 마음도 생긴다. 독일의 코로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확실히 장기화될 것 같다. 특히 우리 동네는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어서 3월 달에 감돌던 긴장감이 다시 느껴질 정도이다. 전문가들이 예견하기로는 올 겨울 정말 조심해야 할 거라는데 나는 왠지 그 여파가 내년 중반까지는 가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타이밍이 거지 같다.


그러나 끓어가는 물 속 냄비 안에 있는 개구리처럼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 내 머리를 스치는 걸 보니 무시할 수가 없다. 자꾸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직감은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법이다.  


오랫동안 갈망해 온 일이 있었다. 독일로의 삶을 꿈꿀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자 이 어려운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 줬던, 누군가에겐 지극히 평범할 수 있지만 나 같은 누군가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나의 꿈. 그 꿈이 있어 사실 힘들어도 행복했다. 근데 열심히 해도 이뤄지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정말 있었다. 나의 오랜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지난 몇 달간 상실감에 지독히 아팠다. 이 아픔이 언젠가는 무뎌진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까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아마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아플지도 모르겠다.


사실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이직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인 거 같다. 어차피 완전히 도망갈 수는 없으니 삶의 터전이라도 바꿔야겠다는 마음 말이다. 3년의 경력이 있으니 이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고 이직을 통해 사는 환경이든 뭐든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어차피 남편도 이제 대학을 졸업했고, 자기가 원하는 직장 구하는 것도 다른 도시가 여기보다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비록 직장 때문에 이 곳으로 이사 왔지만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초심을 잃지 말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힘든 내 마음을 괴롭히면서까지 어딘가에 매여있고 싶지는 않다. 사실 일 할 의욕조차 잃어버린 최악의 상태라 이직 준비를 완벽하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한다.    


그러나 차근차근 느리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겠지.

편함따위는 쌈 싸 먹은 이런 요령없는 삶 같으니라고.


This, too, shall pass away.


Photo by Public Co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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