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7)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7)
★★☆
: 영화의 기적 같은 단 한 사람, 손예진
14년, 멜로 영화의 손예진을 기다린 시간이다. 생각해보시라. 정우성 앞에서 소주 한 잔을 원샷하던 손예진과 조승우 앞에서 숨죽여 울던 손예진은 벌써 10년 전의 손예진이다. 이유인 즉, 한국 영화계에서 멜로는(그것도 정통멜로는) 잘 안 팔리는 애물단지이자 희귀템이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2018년 3월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멜로퀸 손예진이 정통멜로로 돌아왔다. 그래서 잘 만들어지길 바랐다. 사랑의 아픔에 펑펑 울고 싶은 날, 가슴 저미는 사랑을 느끼고 싶은 날. 그런 날 꺼내볼 영화에 또 다른 손예진이 더해지길 바랐다. 거기다 상대역이 소지섭이라니! 아, 벌써 마음 아플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국 패치’된 판타지 멜로
기대가 무색하게도,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7)는 로맨틱 코미디란 길을 기웃거린다. 이런 시도는 상업영화로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다. 원작 영화의 아련한 맛만으론 정통멜로의 불모지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했겠지. 뭐, 전체적인 구조는 정통멜로를 표방한다. 하지만 입 안에 넣자 심심하고 아련한 맛은 온데간데없고, '토토가스러운' 복고 코미디가 톡톡 튄다. 원작엔 없는 고창석과 이준혁 캐릭터가 감초로 등장하는데, 특히 고창석이 연기하는 흥구는 영화에 ‘고오전적인’ 유머를 불어넣는다. 펭귄 분장을 하고 뒤뚱거리는가 하면 공포의 회전목마를 몇 번 탔을지 모를 아역-성인의 전환을 보여준다. 거기에 소지섭은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핑크색 정장은 정말이지 충격적) 지호(김지환)의 깜찍한 연기 또한 함박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로맨스조차 한국식 드라마로 꽉꽉 찬다. 우리가 로맨스! 학교!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고전적인 플롯이 수아와 우진의 어린 날을 장식하는데, 그 뻔한 맛은 나쁘지 않다. 원작에선 큰 사건 없이 흘러갔던 어린 날의 사랑이 좀 더 구체화되고 드라마틱해졌달까. 오히려 현재의 로맨스 서사는 가족과 기억이란 이름으로 쉽게 봉합되는 면이 있는데, 90년대의 사랑은 복고 프리패스에 힘입어 고전적인 것들로 최대한의 재미를 뽑아낸다. 그래, 리메이크가 다다를 종착지가 ‘대중성 확보’였다면, 이 여정은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톤 앤 매너가 벗겨지자
그러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로맨틱 코미디화가 리메이크의 목적은 아니었을 터. 종착지는 절절한 멜로와 가슴 아픈 사랑이고, 로맨틱 코미디란 작법은 관객을 데려다 줄 운송수단 정도였을 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가볍고 발랄한 각색은 길을 헤맨다.
영화는 원작의 판타지를 충분히 의식했다. (설정 자체가 판타지이기도 하고) 영화의 시작은 동화가 연다. 가족의 집도 동화 속 오두막집 같은 외양이고, 아날로그 감성들이 -일례로 다이어리와 졸업앨범에 쓴 글귀라던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란 영화의 핵심 언어도 여기서 나오지 않나-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한국 패치로 덕지덕지 덧붙은 코미디는 이 판타지와 유연히 섞이지 못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펭귄이란 상징은 동화와 ‘황제펭귄’이란 직접적인 언급으로 충분히 전달되었는데도 고창석이 펭귄 옷을 입고 코믹하게 뒤뚱거린다던가, 터널 속에서 수아를 다시 만난 순간, 요상스러운 배경음이-근래 로코에서도 안 쓸 법한- 분위기를 망친다던가. 감초로 집어넣은 이준혁 캐릭터도 과하게 오버스럽고 작위적이라, 영화의 분위기를 망친다.
톤 앤 매너가 벗겨지자, 환상은 민낯을 드러낸다. 원작 영화가 2005년 일본 영화라는 걸 감안해도, 전형적이고 조악한 가족주의는 수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인간 수아의 생애는 영화 속 어디에 있나. 수아는 가족주의의 화신으로서 돌아오고, 우진의 아내와 지호의 엄마로서 설명된다. 우진의 꿈이 무엇이었고 그가 왜 심장을 부여잡는지는 설명되지만, 수아가 어떤 꿈을 가졌었고 어떤 병명으로 죽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가족’과 ‘사랑’이란 이름으로 수아를 포섭해야 하니까. 그게 영화의 전개이며 주제니까.
이뿐인가. ‘너를 태어나게 하려고 엄마 아빠가 만났다’는 말로 가족 서사가 봉합될 수 있다고 믿고, 아이가 클 때까지만 열심히 살다가 제 곁으로 오라는 말로 로맨스 서사가 봉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 이건 영화고 영화에는 장르란 것이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야겠지. 그러나 장르란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던 그 판타지, 바로 펭귄 동화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 영화의 톤 앤 매너가 벗겨지며 그 판타지가 사라지니, 남는 건 원작의 민낯뿐이다.
손예진이란 장르
그러다 보니 과잉은 엉뚱한 데서 터진다. 지호 학예회 씬이 대표적인데, 지호가 아빠를 잘 돌보겠다, 청소는 어떻게 해야 한다, 계란 프라이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엄마를 향해 외치는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나. 기특함? 슬픔? 안쓰러움? 아니, 학예회장을 꽉 채운 부모들의 박수소리처럼, 영화가 울음과 안쓰러움과 슬픈 감정에 푹 빠져 곡소리를 내니, 관객은 귀가 아파 멀찍이 떨어지게 되더라. 오히려 스쳐 지나가듯 보이는 지호의 불안한 눈이 더욱 절절하고 슬프다.
그렇게 떠돌이 신세가 된 영화는 손예진에게 묻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 하죠, 예진 씨?” 그럼 우리의 멜로 치트키 손예진은 절절한 멜로 연기로 방향을 안내해준다. 신기한 건, 손예진은 수아의 모든 모습을 완벽하게 체화한다는 것이다. 영화 특성상 수아는 ‘너’의 자리에서 타자화되는데 (마지막 회상 시퀀스는 이걸 뒤집으며 영화적 재미를 만드는 것이고) 손예진의 수아는 영화 내내 ‘나’의 자리에 서 있는 듯하다. 지호의 엄마, 우진의 아내가 아니라, 수아의 아들 지호, 수아의 남편 우진으로서 인물이 구체화되는 느낌. 원작보다 매력적인 수아는 손예진의 연기와 분위기에 전적으로 빚진다.
특히 그 붉은 눈가. 울 때마다 눈 주위가 빨갛게 물드는데, 그때 눈시울을 함께 붉히지 않은 관객이 얼마나 될까.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고 독백하는 목소리에 가슴 아리지 않았던 관객은 또 얼마나 될까. 손예진은 영화가 놓친 장르의 힘을 배우로서 되살린다. 이쯤 되면 한국 멜로 영화의 한 장르로서 손예진을 꼽아도 될듯하다.
오죽하면 장르를 간신히 붙들던 손예진이 사라지자, 영화가 빽도(Back 도)로 뒷걸음질 칠까. 카메오 박서준은 반갑기보단 생뚱맞고, 소지섭과 부자 같지도 않다. (<사도>의 엔딩을 소지섭이 장식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 손예진이 인공호흡한 멜로는 그가 사라지자, 함께 사라져 버린다.
결국 관객을 지금 만나러 온 건 예진 씨뿐.
그렇담 영화의 기적 같은 단 한 사람은 예진 씨인 것 같네요.
#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브런치 무비 패스 (brunch movie-p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