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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Jul 29. 2021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해한 최선

- 영화 <최선의 삶>

*아트나인 영화관 '페이퍼 나인' 8월호에 실린 리뷰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고등학생인 강이, 아람, 소영은 학업에 싫증을 느끼며 함께 일탈 행동을 하곤 한다. 어느 날 셋은 어떤 목적지도 계획도 없는 채로 무작정 가출한다. 거처도 할일도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함께 있다는 것에 그저 즐겁다. 부모가 있는 집을 두고 다른 집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 집이란 사랑과 안정감을 충족하는 공간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결여된 학교와 가정을 박차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을 보며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필사적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펼쳐지는 상황은 위태롭기만 하다. 사회적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게 된 아이들은 점점 지쳐 가고 처음의 활기를 잃는다. 이후 셋이 함께 살 집도 마련하지만 그곳에서 이들 사이의 균열은 더욱 커진다. 친구들끼리 이룬 가정에서도 사랑과 안정감은 끝내 충족되지 못한다. 


그 배경에는 아이들의 가정에서처럼 역시 무심함이 있다. <최선의 삶>에서는 소통의 부재가 내내 형상화되어 우울감과 외로움이 화면 가득 느껴진다.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강이의 부모(세 아이들의 부모들 중 유일하게 화면에 등장하는)까지 작중 인물들의 말은 대체로 상대에게 가닿지 못한다. 혼잣말 혹은 옆에 누가 있어도 발화자만 이해할 수 있는 말, 상대의 대답을 듣지 못하는 말이 그렇다. 프레임 안에서 대화는 물론 말 자체가 극소화된다. 


<최선의 삶>은 말보다는 인물들의 눈빛을 담는 데 주력한다.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발화(發話)하지 않는 감정이 눈빛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눈빛은 상대에게 주관적으로 읽히기 때문에(오해까지 일으키기도 한다) 소통의 부재를 가중시킬 뿐이다. 


결국 세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시점에서부터 이들의 사이 또한 변질되기 시작한다. 인물들은 모두 무력함을 이겨내고 삶을 버텨내기 위해 각자만의 방식대로 필사적인 모습이다. 다만 이들의 최선은 타인과의 어떤 소통과 교감 없이 결국 유해한 힘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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