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띠귿 Mar 01. 2022

검사내전 #1

호메로스는 만약 인간이 자기 운명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신들 탓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장님 때문이라고 했다.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등기부를 떼어보기만 했어도, 잔고증명서의 명의인을 살펴보기만 했어도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전한 것도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섭 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71p)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문득 첫맛과 중간 맛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적절한 허기와 맛있는 맛에 대한 기대감, 첫 느낌의 짜릿함이 적절히 버무려진 첫 입의 그 맛은 여러 번 숟가락을 들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나 감각은 무뎌진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맛보고 있는 맛은 이제 더 이상 짜릿함은 사라지고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한 반복적인 활동으로 바뀌게 된다. 

목사님의 부동산 사기사건 편을 읽으며 아차 싶었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은 발전에 강력한 연료가 될 순 있지만 사람은 욕심과 욕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이 욕심과 욕망에 얼마나 내주었는가 판단이 서는 건 찰나의 순간과도 같다. 


오늘의 사치는 내일의 보편화가 된다고 한다. 나 또한 뒤돌아 살아온 흔적들을 들춰보면 지금의 위치가 과거 어느 순간의 내가 바랬던 모습이었고 머리 누일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으며 원룸을 구할 때가, 돈을 받으면서 실력을 키우기만 해도 감사할 것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채용 공고들을 살펴보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러나 어느새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이전보다 풍족한 급여로 무엇을 살 때 고민을 한번 

덜하게 되는 지금의 나는 그다음 단계를 바라보며 또다시 전전긍긍하며 일상에 치이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 


이 이야기의 사기 사건으로 목사님은 7년 동안 사기꾼들에게 끌려다니며 모든 재산도 잃고 부인과도 헤어졌으며 그 충격에 뇌졸중으로 현재는 앉지도 걷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교류하며 그가 말했던 덕목들에 둘러싸여 살아갈 수 있는 분도 스스로의 욕심이 지배받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나 보다. 한 사람의 하나뿐인 인생의 말로를 보고 나선 더욱 아찔하다.


종종 역사책을 집어 들곤 한다. 사람은 자기의 생으로선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지만 역사로 보면 수억 번의 반복된 상황, 감정, 경험에 또 한 번 얹는 것뿐이며 내가 바라며 달려가는 그곳에 도달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상황을 맞이했으며 어떤 마무리를 지었는가를 보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봉사활동이나 후원 등의 활동은 남을 돕고 내 것을 내주기보단 지금 내 상황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하며 오히려 많은 걸 얻곤 한다. 오를 봉우리를 한번 바라보고 나서 때론 올라온 길을 돌아보며 뿌듯해하기도 하고 같이 가는 옆사람을 바라보지 않으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욕망과 욕심은 어느새 내 머리 꼭대기에 와 있다. 그러면 별처럼 많은 이성적 판단 조건을 뒤로하고 감사할 때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며 나락행 열차의 우등 칸에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겠지.


어쩔 수 없이 욕심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나의 삶에서 행복했던 날의 비율을 늘리고 행복한 사람으로 마무리를 하고 싶기에 범사에 감사하라던 그 문장을 절대 잊으면 안 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