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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대드 Jul 05. 2024

아빠의 눈물

형의 군 입소식과 결혼식

47세의 형이 늦각기 결혼을 발표했다. 

한 살 어린 동생으로서 어엿한 성인의 싱글 생활에 걱정한 바 없지만 엄마는 늘 형이 혼자라는 사실을 걱정하셨다. 내가 아프면 걱정과 함께 '그래도 넌 돌봐줄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네 형은...'으로 이어지는 이 뻔한 얘기. 사실 이제 그런 어머니의 걱정으로 말미암은 '형에게 연락해 보라'는 걱정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아빠는 되려 형의 싱글 생활에 의견을 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개인에게야 직접 얘기하셨겠지만, 적어도 나나 가족이 다 있는 자리에서 형의 결혼을 기대하는 얘기를 하지 않으시니 '경상도 남자가 다 그렇지'하는 마음으로 무신경하게 받아들였다. 


47년생 남자 어른은 잘 울지 않는다. 

특히 경상도 남자라면 다른 사람 앞에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아빠의 눈물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형이 결혼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부모님과 만나고 온 날 아빠의 얼굴을 보자 아빠의 눈물이 생각났다. 


형이 입대하던 날이었다. 

재수를 한 형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으니, 아마 입대한 해는 1997년이었던 것 같다. 

형은 춘천 102 보충대에 입소하게 되었다. 

아빠는 운전대를 잡고, 엄마는 앞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런저런 당부의 얘기를 계속해주었다. 춘천 출신인 엄마는 춘천과 강원도의 추위를 걱정하셨고, 아빠는 20년도 넘은 본인의 군대 때는 더 어려웠다는 얘기로 형을 안심시키고자 했다. 

제삼자인 나도 얘기를 들을수록 걱정되고 두려움이 몰려오는데 당사자는 오죽했으랴. 

음악을 하느라 목관리를 가장 걱정했던 형은 연신 물을 마셨고, 마실 때마다 좋은 목소리를 체크하듯 큰 소리로 웃으며 엄마를 위로했다. 


점심은 먹고 입소하기에 입대 전 형이 좋아하는 돼지갈빗집으로 갔다. 돼지갈비 맛이나 했던 얘기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형이 했던 딱 한 마디는 떠오른다. 

"콜라가 그렇게 먹고 싶어 진다니 많이 마실게요. 하하하" 

음식점 콜라는 비싸다는 이유로 식당을 나가야 사주시던 아빠도 이번엔 군말 없이 콜라를 주문한다. 


모래바람 자욱한 연병장과 중고등학교보다 높은 연단은 마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지독함과 목이 꺾이도록 올려다봐야 하는 권위의 폭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병장은 드넓고, 그 안을 빼곡하게 채운 훈령병 입소생들. 사방을 둘러싼 스탠드마다 가족들의 걱정 가득한 눈빛이 가득하고, 이미 이곳저곳에서 눈물바다인 곳도 있다.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어서 형이 연병장으로 내려가자마자 눈물을 보인다. 나는 엄마의 어깨를 안고 같이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먼 곳을 바라보며 요즘 내부반은 어떻게 생겼는지, 훈련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아무 의미 없는 말들에 엄마는 아들을 보라며 계속 눈물을 흘린다. 돌바닥에 발이 끌리고, 자박거리는 모래소리가 가슴을 후빈다. 소란함 속에 연병장을 달려가는 형은 엄마의 눈에 좋은 모습을 보이려 연신 웃는다. 웃다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눈물을 보고 엄마는 오열한다.


지난한 훈련소장의 연설은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최소한의 미사여구로 채워졌다. 위로가 되지 않는 말들이지만, 격식이 안심시키는 순간도 있다. 입소식이 마무리되고 도열한 줄들은 어딘가로 향한다. 

형은 고개를 돌려 가족을 찾는다. 

엄마는 형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든다. 나도 흔든다. 아빠는 흔들지 않는다. 

못 찾았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엄마의 목소리를 더 크게 소리친다. 아수라장 같은 연병장 스탠드. 가족들은 무너지고, 아들들도 끝까지 참았던 의연한 모습을 거두고 두려움을 드러내는 얼굴을 보인다. 


긴 꼬리를 문 아들들의 행렬이 다 마치기 전에 아빠는 차에 먼저 가있겠다고 하고 떠나셨다. 

엄마는 그 수많은 아들들의 온기에서 자신의 아들의 기운을 겨우 찾아내듯 한동안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신다. 대한민국의 분단현실이 정말 싫어지는 순간이다. 내가 성인이 되면 통일이 되어있거나, 징병제가 사라져 있길 바랐는데, 아들의 입대도 10년 이내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심란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연병장 같은 자박자박 걷는 모래바닥. 모래 밟히는 소리에 이런 곳에서 6주 훈련소 생활할 아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또 눈물이 난다. 입소하기 전 형을 비롯한 서로를 위로하던 말들은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 말 없이 걸어도 걸어도 눈에 밟히는 마지막 모습. 


우리 차를 찾아 차문을 연다. 아빠는 운전석에 앉아있다. 

평소라면 아빠는 우리가 차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출발했을 텐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 

정적만이 차에 탐승한 것 같다. 영겁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는데 갑자기 앞자리에서 들어본 적 없는 큰 울음이 튀어나온다. 아빠는 핸들을 두 손으로 붙잡고 목놓아 운다. 꾹꾹 눌러 참던 울음이 한숨에 폭발했다. 시간 동안 아빠의 오열을 계속됐다. 


복잡 미묘한 감정. 아빠는 왜 형 앞에서 웃어주거나, 울어주지 않았을까. 

굳이 이렇게 차 속으로 감정을 눌러 담아왔어야 했나. 

이렇게 아쉽고 걱정되었으면서 왜 아빠는 형에게 걱정의 말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이 바라지만, 유독 아빠만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던 형의 결혼도 똑같다는 생각이다. 


18년 전 내가 결혼할 때는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던 아빠도 이번에는 헤어-메이크업을 받겠다고 하신다. 

18년 새 나이 든 본인의 얼굴탓을 하지만 나는 알 것 같다.

아빠는 형의 결혼을 그렇게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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