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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화수 Aug 27. 2018

그래도, 그래도 살아야했다

영화 '그래비티'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그래비티(gravity)' 알폰소 쿠아론 감독,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주연, 2013년



하지만 가기로 했으면 계속 가야 해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라이언(산드라 블록 역)은 특수한 임무를 띠고 우주실험에 나선 의사다.

그녀의 곁에는 우주유영 기록 경신과 지구 감상을 취미로 하는 낙천적인 베테랑 우주조종사 매트(조지 클루니 역)가 함께했다.

침묵과 고요. 산소도 중력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라이언은 묵묵히 실험에 열중한다.

그녀는 매트의 실없는 농담도, 휴스턴(지구)에서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귀찮기만 하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여기에서 뭐가 제일 맘에 들어요?
침묵이요


매트의 질문에 그녀가 짧게 대답한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우주공간에 대혼란이 발생한다.

러시아가 자국의 스파이 위성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생긴 파편들이 지구궤도를 돌며 연쇄적으로 위성들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날아오는 파편들은 라이언 일행을 덮쳤고 그 과정에 라이언은 우주 먼 곳으로 떠내려간다.

극도의 공포가 지나고 정신을 차려 통신을 시도하지만 먹통.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는 라이언.

그때 어디선가 매트의 신호가 잡히고 이내 매트는 우주공간을 유영해 라이언을 찾아낸다.

라이언은 매트와 연결해주는 가느다란 끈 하나에 의지한 체 매트에 이끌려 우주선으로의 복귀를 시도한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그러나 우주선 마저 처참하게 파괴된 상황.

산소도 한 자릿수밖에 남지 않자 라이언은 또 절망하고 좌절한다.


괜찮아요. 우주정거장까지 가서
소유주를 타고 지구로 가면 돼요.
걱정 말아요.



매트는 다시 그녀를 다독여 우주 유영을 시작한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네?
저기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보며
당신을 생각할 사람이 누구냐고요?
남편? 애인?
딸이 있었어요.
놀이터에서 놀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었어요...
그렇게 허무하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라이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지만, 매트는 직감적으로 그녀에게 삶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음을 느낀다.

마침내 우주정거장에 도착. 하지만 이곳도 파괴된 건 마찬가지.

매트는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추진기를 사용해 접근을 시도하지만 이리저리 튕기다가 우주 밖으로 밀려난다. 발이 줄에 걸린 라이언이 그와 자신을 연결해 준 가느다란 끈을 간신히 잡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줄이 계속 풀린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나를 놔요 라이언
안돼요 매트. 내가 잡았어요!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아니에요. 라이언...
때로는 놓아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이 말을 남기고 매트는 스스로 줄을 놓고 머나먼 우주로 떠 내려간다.

혼자가 된 라이언. 숨도 쉴 수 없는 상황.

그녀는 안간힘을 다 해 우주정거장 진입에 성공한다.

그러나 지구를 한 바퀴 돈 파편들은 다시 우주정거장을 덮치고, 우여곡절 끝에 라이언은 탈출선에 몸을 싣고 멀리 보이는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이동을 시도한다.

그러나 탈출선의 연료는 바닥난 상황.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라이언은 스스로 탈출선의 산소를 빼고 자살을 결심한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바로 그때,

'쿵. 쿵. 쿵'

탈출선의 해치를 두드리는 소리.

매트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매트는 탈출선 안으로 들어와 다시 전원과 산소를 공급하고 대화를 시작한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왜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안 갔어요?
다 해 봤어요. 연료가 없어요
착륙할 때 쓰는 연료가 있잖아요.
이륙이나 착륙이나 같은 거 몰라요?
...
그냥 여기에서 있으면 조용하죠. 편하죠.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괴롭겠어요. 자식이 죽는 것만큼
괴로운 게 어디 있다고...
"..."
하지만 라이언! 여기 왜 있는지 생각해봐요. 가기로 했으면 계속 가야 해요.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예요...



다시 의식을 찾는 라이언.

매트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만난 매트가 살아야 하는 이유도, 방법도 알게 해 줬다.


삶은 살아야 하니까 삶이다



이제 라이언은 지금껏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고,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아픔을 직면한다.

비로소 죽은 자신의 딸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매트, 내가 당신의 농담을 들어줬으니까
이제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곧 여자 아이 하나를 만나게 될 거예요.
머리 묶는걸 지독히 싫어하는.
그 아이에게 엄마가 빨간 신발을 찾았다고 말해주세요.
침대 밑에 있었다고.
그리고 엄마가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줘요...



지구와 우주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지독한 경계를 뚫고...

라이언은 다시 지구 진입을 시도한다...

그 뜨거운 열기를 뚫고...

라이언은 삶의 한 복판으로 다시 들어온다...

카메라는 붉은 흙을 힘겹게 딛고

다시 우뚝 선 라이언의 두 다리에서

오랫동안 머문다...


<영화 그래비티 중에서>




얼마 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던 한 정치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거대 권력과 자본에는 당당히 맞섰고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는 벗이 되어 주었던 고인의 삶을 회고하며 많은 이들이 아파했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던 삶에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오점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그 오점이 번지고 번져 자신에게 다가올 때는 숨통을 죄는 고통이 엄습했을 것.


어쩌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비난은 견디기 쉬웠을지 모른다. 그가 추구해 온 진보정치가 조롱받고 뜻을 같이 한 이들이 비난받는 것에 비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어야 했다.

치열하게, 더욱 치열하게 살아남았어야 했다.

비난한다면 받아야 했고, 져야 할 책임이 있다면 져야 했다.

그래서 잘못은 용서받고, 오해는 풀고, 나쁜 관행과 질서는 고쳐나가야 했다.


죽음으로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덮겠다는 생각은 비겁하다.

죽음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진 미안함을 갚겠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죽음으로 억울함을 증명하겠다는 생각은 무책임하다.

죽음은 삶의 문제에 어떠한 답도 줄 수 없다.

죽음이 줄 수 있는 답은 오직 죽음뿐이다.


그래서 치열하게, 더욱 치열하게 살아남았어야 했다.

삶은 살아야 하니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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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읽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영화는 허구적 상상력의 집약체이지만, 그 허구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상상력도 인간의 심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나름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흥미로운 통찰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읽으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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