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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화수 Aug 31. 2018

사명과 욕망, 그 아슬아슬한 경계

영화 '원티드'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원티드(wanted)'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 제임스 맥어보이, 안젤리나 졸리 주연, 2008년



평범한 청년 '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 회계담당 직원인 그는 오늘도 자신을 무시하는 상관으로부터 모멸을 당한다. 그녀로부터 모멸을 당할 때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시야가 흔들려서 진정제를 먹어야만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그의 오랜 친구는 틈틈이 자신의 애인과 바람을 피운다. 웨슬리는 그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친구에게도, 자신의 애인에게도 말을 못 한다.


우울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웨슬리는 슈퍼마켓에서 매력적인 킬러 '폭스(안젤리나 졸리 역)'를 만나 원치 않는 총격전에 휘말린다. 폭스는 자신이 쏜 총알로 상대가 쏜 총알을 막아내기도 하고 총알의 궤적을 곡선으로 회전시켜 숨어 있는 상대를 저격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가능한 방법의 총격전을 벌인다. 결국 폭스는 웨슬리를 죽이려는 다른 킬러로부터 그를 지켜낸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폭스는 웨슬리를 역사가 오래된 한 방직 공장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웨슬리는 '슬로언(모건 프리먼 역)'을 만난다. 슬로언은 폭스와 같은 킬러들이 모여 활동하는 '암살단'의 리더. 이 암살단에게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운명의 방직기'가 암호화된 이름을 직조하면 그 암호를 해독해 방직기가 지목한 이름에 해당하는 인물을 무조건 암살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방직기가 지목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암살단은 알 수 없지만 암살한 후에는 알게 된다. 방직기가 지목해 온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나 연쇄살인범 등 큰 범죄를 저질렀거나 계획하고 있는 자들. 암살단은 방직기를 통해 세계대전을 막아내기도 하고 흉악범죄를 끝내기도 했다.


운명의 방직기가 직조한 암호를 해독하는 건 오직 한 명 '슬로언', 그는 신적 영역을 대리한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웨슬리는 슬로언으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는 이 암살단의 핵심적인 킬러였고, 조직을 배신한 다른 킬러 '크로스(토마스 크레취만)'로부터 암살당했고, 크로스가 아버지에 이어 웨슬리 또한 암살하려고 할 때 폭스를 보내 구했다는 것.

그리고 웨슬리가 흥분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심장박동과 흔들리는 시야를 느끼는 건 일반인들보다 수십 배 심장이 빨리 뛰는 암살자의 피를 타고났기 때문이며, 훈련을 받게 되면 일반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총알의 궤적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암살단에 들어가 모진 훈련을 받고 결국 그 일원이 된다. 그리고 매일 아버지를 죽인 크로스를 암살하기 위해 훈련과 실전에 매진한다. 이 과정에서 웨슬리는 우울했던 자신의 지난날들을 청산하고, 사회를 위험에 빠트리는 범죄자와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원티드 중에서>



마침내, 방직기가 '크로스'를 찍어냈다.


웨슬리는 크로스를 암살하라는 방직기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크로스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폭스는 웨슬리의 이름이 직조된 천 조각을 슬로언으로부터 받아 들고 웨슬리의 뒤를 쫓아간다. 열차에서 크로스를 마주한 웨슬리. 둘은 불꽃 튀는 총격전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열차가 철로를 이탈해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는다.

 

열차와 함께 추락하는 웨슬리.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았다. 바로 크로스, 아버지를 죽인 킬러. 크로스는 웨슬리를 온 힘을 다해 끌어올렸지만, 웨슬리는 크로스의 심장에 총알을 꽂는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크로스, 그를 바라보는 웨슬리,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죽어가는 크로스의 입에서 믿기 힘든 말을 듣는다.



저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야. 웨슬리.
내가... 너의 아버지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동물적으로 자신에게 총구가 겨눠진 것을 느낀 웨슬리. 폭스였다.



이 말이 사실이야?
당신도 알고 있었어
그래



웨슬리는 열차의 창을 깨고 아버지인 크로스와 함께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어두운 다락방에서 눈을 뜬 웨슬리. 그의 옆에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한 노인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그로부터 아버지 크로스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된다.


크로스는 아들 웨슬리만큼은 킬러의 삶을 택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랐고, 아들의 옆 집에서 그의 성장을 지켜보며 살아왔던 것, 그러던 중 '운명의 방직기'가 조작되고 있고, 암살단의 절대 원칙이 깨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킬러들을 암살하던 중 웨슬리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암살단의 리더 슬로언은 최고의 킬러 크로스가 아들인 웨슬리만큼은 죽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웨슬리를 포섭해 기만함으로써 아버지인 크로스를 역으로 죽이도록 만들었다는 비참한 사실도 알게 됐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웨슬리는 아버지가 계획했던 암살단 파괴 계획을 넘겨받고 실행에 돌입한다.

쥐를 폭탄으로 이용해 방직공장을 파괴하고 홀로 뛰어들어 킬러들을 하나씩 암살한다. 그리고 슬로언이 머물고 있는 방에 도착한 웨슬리. 그러나 폭스를 비롯한 최고의 킬러들이 웨슬리를 포위하고 있다. 절규하듯 진실을 폭로하는 웨슬리,



당신들은 슬로언한테 속고 있다.
운명의 방직기는
오래전에 슬로언의 이름을 찍어 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당신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킬러들. 그들이 생명과 같이 믿고 지켜왔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물론이다 웨슬리.
방직기가 내 이름을 찍었다.
하지만, 나만 찍어 낸 것이 아니다.
여기 있는 킬러들 이름이 다 찍혔다.
 너도, 너도, 너도... 폭스 너의 이름도 있다.



슬로언이 킬러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천 조각들을 킬러들 앞에 하나씩 떨어트린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방직기는 오래전
우리 모두의 이름을 찍어냈다.
원칙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죽었어야 한다.
하지만, 난 이 원칙을 어기고
나와 우리 모두를 살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
이 힘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힘으로 지금까지와 같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슬로언의 주장에 흔들리던 킬러들은 결심을 굳힌다.



방직기 따위!
방직기가 뭐라든 난 상관하지 않겠다!
우리가 힘이 있는데
방직기가 무슨 상관인가!
이제 방직기 따위는 무시하자.
우리의 결정이 곧 방직기의 결정이다!
우리는 방직기의 노예가 아니다!



그 순간,

폭스는 회심의 총알을 회전시켜 날린다. 회전하는 한 방의 총알은 웨슬리를 중심으로 빙둘러선 킬러들의 머리를 관통했고, 다시 돌아와 총을 쏜 폭스에게 향한다. 폭스는 만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날아오는 총알을 받아들인다.



<영화 원티드 중에서>





지난 2008년 개봉했던 영화 '원티드'.


철 지난 이 오락영화가 종종 케이블 TV 영화채널 등에서 방영될 때마다 눈을 떼지 못하고 다시 보게 되는 건, 안젤리나 졸리라는 호화 캐스팅 때문도, 총알이 휘는 화려한 액션씬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종종 현실에 투영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성폭행을 저지른 연예계의 한 유명 인사는 자신의 행위가 예술을 위해서, 후배를 가르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거액을 횡령한 어느 기업의 대표는 이 모든 게 기업과 직원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운 잇권에 개입해 부당한 부를 챙긴 모 정치인은 오직 국민들을 위해 살아왔다고 항변했다. 심지어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 부당한 일을 저지른 한 성직자는 이를 '신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성폭행을 저지르기 전 그 유명 인사는 예술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웠었다. 거액을 횡령한 기업의 그 대표도 헌신적인 노력으로 어려운 회사를 살려냈던 적이 있다. 사사로운 잇권에 개입하기 전 그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았었다. 부당한 일을 저지르기 전 그 성직자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줌으로써 사랑과 존경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명'을 '욕망'으로 치환했을 때, 그들은 그저 '범죄자'에 불과했다. 영화 원티드의 킬러들이 운명의 방직기가 정한 바에 따라 악당들을 처단했을 때는 '정의의 사도'들이었지만, 그것을 조작하고 왜곡해서 스스로 정한 바에 따라 사람들을 죽였을 때는 그저 살인범, 또 하나의 테러집단에 불과했던 것처럼...


'사명'과 '욕망' 그 아슬아슬한 경계...


사명은 권력을 수반할 때가 있다.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부여된 권력을 사명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할 때, 그리고 그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 싫어서 원칙을 비틀고 부당하게 행사할 때, 그 비틀어 놓은 원칙과 부당하게 행사된 권력은 언젠가는 스스로의 목을 죄어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비틀어진 원칙과 부당한 권력, 그 욕망 위에는 어떠한 사명도 바로 세워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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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내용과 의미를 충실하게 전함으로써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읽는 영화'로서의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그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영화는 허구적 상상력의 집약체이지만, 그 허구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상상력도 인간의 심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나름의 현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하고, 흥미로운 통찰과 관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읽으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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